Monday, July 24, 2023

가름끈: 초타원형 10년


정현 개인전 2.5 도록
«가름끈 / TASSEL / シオリ»
정현, 2023, 245 × 345 mm, 4쪽
디자인: RW(리센트워크)

2023년 2월 21일 부터 일주일간 전시된 정현의 개인전 2.5 «가름끈 / TASSEL / シオリ»을 위한 도록. 초타원형 출판 10년을 기념하는 전시와 동명의 인쇄물이다. RW(리센트워크)가 디자인한 해당 인쇄물은 타블로이드 판형보다 조금 작은 크기이다.

전시 도록을 굳이 인쇄물이라 칭하는 까닭은, 일반적인 도록으로 보기에는 너무 불완전해 보이고, 딱히 그렇게 보이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흑백 인쇄, 가로로 늘어선 이미지, 단순 표제의 나열, 설명 없음, 제본이 필요 없는 양면 인쇄된 한 장의 종이가 반으로 접힌 본 인쇄물은 아무리 보아도 어떤 형식을 표방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리센트워크는 아무 코멘트도 남기지 않았으며, 도록 디자인에 대한 어떠한 비평도 딱히 바라지 않았다.

일견 '무형식의 형식'이라고 해야 할 수준의 "디자인 없음" 상태는, 디자인 포화 상태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국내 전시 기록물 경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그런데도 클라이언트의 모든 요청사항은 잘 반영하고 있다. 즉, 도록의 디자인 보다는 개별 프로젝트의 순서와 방향성, 그리고 물리적 크기와 재료 등 클라이언트가 모아온 이미지와 행적에 훨씬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그 어떤 "디자인"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디자이너의 "죽음"과 같은 상황을 암시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선택지야말로 초타원형의 독립 출판 활동 10년 기념비를 위한 최적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초타원형 출판이 10년간 출간했던 모든 책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는 본 인쇄물의 최종에는 당연히 «가름끈 / TASSEL / シオリ»이 놓인다. 그런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책 표지인 전시장 사진이 있다. 이는 이어서 펼쳐지는 현실의 도록 4 페이지 이미지들과 마찰하며 매우 큰 의문을 자아낸다.

이 도록의 "얼굴"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해당 인쇄물은 오프라인에서 일부 배포될 예정이며, 건축가 정현이 참여한 전시,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 작가 인터뷰 코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배포처: 미정

Wednesday, March 24, 2021

YNLDLHRS: YES/NO/LIKE/DISLIKE/LOVE/HATE/REPLY/SHARE

YES/NO/LIKE/DISLIKE/LOVE/HATE/REPLY/SHARE: THE PORTRAIT OF KOREAN POP CULTURE 2000-2020
네/아니오/좋아요/싫어요/사랑/혐오/댓글/공유: 2000-2020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
『네/아니오/좋아요/싫어요/사랑/혐오/댓글/공유: 2000–2020년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

발행일 2020년 12월 24일
발행인 정현
발행처 초타원형
등록 2012년 8월 3일 제2012-000267호
이메일 info@superellipse.net
홈페이지 http://superellipse.net

글 김일림, 윤원화, 정현, 최정윤, 콘노 유키
번역 진균능(영어), 장자미(중국어), 하성호(일어)
도움 이현구
디자인 신신

ISBN 979-973189-0-0-003650
정가 48,000원

ⓒ 초타원형, 2020

이 책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후원 서울문화재단

초타원형
정현의 프로젝트
+타이 밴더빌트, 김상훈

초타원형 출판은 2020년 5월 2일 부터 6월 2일까지 아트딜라이트에서 열렸던 전시 《네/아니오/좋아요/싫어요/사랑/혐오/댓글/공유: 2000–2020년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과 동명의 제목을 가진 책을 선보인다. 대중문화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받은 214명 작가의 작품들을 지면에 전시한다는 기획하에 작가들이 스스로 고른 2000–2020년 사이의 출품작 4점을 동등한 위계로 전개하는 본 출판물은, 총 856점의 컬러 이미지가 수록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본 도서는 국내외 컬렉터들과 유수의 갤러리에 전달될 예정으로 한국의 대중문화 기반의 예술을 널리 알리고자 초타원형에서 2년에 걸쳐 기획한 "지면 전시"다. 전시는 작품 정보들만으로 전개되는 INDEX, 작품 이미지를 가감 없이 발표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 IMAGES를 대칭 축으로, 김일림, 윤원화, 최정윤, 콘노유키의 글이 실리는 TEXTS 챕터와 작년 전시 기록이 먼 과거(또는 미래)에 촬영된 영상처럼 스쳐 지나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한, 중, 일, 영 4개 국어 번역이 수록되어 총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하여 선택한 종이, 컬러/흑백/UV/박 인쇄, 양장, 1쌍의 가름끈 등 까다로운 환경에서의 다양한 인쇄와 제본 기법이 특징적이다. 20㎠ 정사각형 판형에 책의 두께만 6㎝에 달하여 마치 사전과도 같이 보이는 책은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신신"이 모든 디테일을 유념하며 아름답게 만들어 준 또 하나의 작품이다.

본 도서 『네/아니오/좋아요/싫어요/사랑/혐오/댓글/공유: 2000–2020년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은 3월 16일 부터 초타원형 갤러리 스마트스토어(프로필 링크)에서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며, 4월부터 교보, 알라딘, 예스24 등의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한정 판매할 예정이다.

구매처: 교보문고, 알라딘,
초타원형 스마트스토어, Yes24

Thursday, March 5, 2020

SET PIECE: 세트 피스

SET PIECE 세트피스
판형 210*297mm (A4)
글 윤원화, 정다영
번역 유지원
사진 김경태
디자인 슬기와 민
인쇄 제본 으뜸 프로세스
ISBN 979-11-966852-8-7-03600
정가 30,000원
© 초타원형, 2019

본 출판물의 저작권은 작가와 초타원형에 있으며,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법에 의해
무단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본 출판물은 2019년 10월 10일 부터 31일까지
서울 아트딜라이트에서 열린 정현의 개인전
《세트 피스 》를 위한 도록입니다.

후원 서울문화재단

SUPERELLIPSE
Project by Hyun Chung
+ Tei Vanderbilt, Sanghoon Kim

『SET PIECE』는 2019년 10월 10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이태원의 아트딜라이트(Art Delight)에서 열린 건축가 정현의 개인전 《SET PIECE》의 도록이다.

2012년 정현이 설립한 프로젝트 초타원형(Superellipse)은 디지털 공간에서 작성된 텍스트와 이미지를 엮어 물리적 공간에 담아내려는 기획을 진행했다. 2014년 『PBT』 출간을 통하여 본격적인 독립 출판사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뒤, 2016년부터 1년간 그래픽 디자이너 김병조, 김형재, 배민기, 홍은주, 사진가 김경태 등과 협업하며 4권의 ‘CC 프로젝트’ 책을 출판하였다.

그간의 책들이 독립 출판의 소비자이자 생산자로서 내/외부자의 시점을 통하여 활동 배경이 되는 도시 서울을 텍스트와 이미지로 기록하려고 했다면, 전시 《SET PIECE》는 책과 책이 놓이는 가구, 그리고 가구가 놓이는 배경을 출판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거대한 도시를 압축하듯 이미지와 텍스트를 모아서 만든 책, 책을 기점으로 확장하는 사물-가구가 만드는 공간. 전시는 이 둘을 비교할 수 있도록 실물의 책, 책의 이미지, 책에서 연유한 다양한 오브제를 한 번에 배열한다. 건축 큐레이터 정다영과 미디어 비평가 윤원화는 이러한 실천을 「축소 지향의 건축/건축가」, 「건축 책에 관한 단편」이라는 제목으로 각자의 시점에서 비평하고 있다.

공간의 창조자이자 사물의 생산자, 동시에 최초의 소비자이기도 한 정현은 전지적 시점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다시 책으로 순환시키고자 한다. 그는 전시를 담는 책이 단순 기록을 넘어서 설계자 정현의 평면적 시점, 저자 정다영과 윤원화의 퍼스펙티브적 시점, 그리고 사진가 김경태의 초인적 시점이 겹쳐진 풍경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슬기와 민은 그러한 개념을 책의 물리적 요소들을 활용하여 구체화한다. 그것은 소박하며, 그 누구라도 재연 가능한 방식이다. 텍스트와 이미지는 전시장 속 가구와 책 등에서 연유한 감각을 따라 선정한 A4 표준 판형(210ⅹ297밀리미터)과 44쪽이라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3가지 다른 질감의 종이를 통하여 구현된다. 엠보스 패턴 종이에는 제목이, 백색 모조지에는 텍스트가, 무광택 도포지에는 이미지가 인쇄되는 식으로 3종의 종이는 각자 별개의 내용을 담는다. 지면의 중앙을 기준으로 질감과 명도가 미묘하게 다른 종이와 콘텐츠가 앞뒤로 중첩되는 모습은 형식적 단순함 뒤에 놓인 세밀한 장치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안무와도 같다.

책에 사용된 폰트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국·영문 표준 활자체인 산돌 고딕네오와 노이에 하스 그로테스크(Neue Haas Grotesk)를 사용하였다. 이 역시 전시 공간 속 물리적 특성을 반영하며 누구나 재연 가능한 결과로 드러난다. 지면에 놓이는 위치와 방식에 따라 본문의 작은 글씨는 지면의 꼭대기에 가볍게 매달리는 한편, 표제의 큰 글씨는 무게감 있는 구조체로서 아래로부터 쌓아 올려진다.

도록 『SET PIECE』의 요소들은 정현이 만든 책, 사물, 가구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엄밀성, 정확성, 경제성과 대구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표준값의 조합과 그것이 만들어 낼 새롭고 다양한 패턴을 약속한다.

무엇이 담기더라도 상관없다. 그것이 설령 시간을 분할하고 거리감을 압축시켜 공간감을 상쇄시킨 초고화질의 책, 사물, 전시 공간 이미지 그 자체라도 말이다. 모든 이미지는 한 페이지, 혹은 절반으로 나누어 담기며 다층적 의미가 재생산되는 풍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초창기 독립 출판물 진(zine)의 제본 재료인 스테이플러를 축으로 하여 매달려 있다는 점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이 얇은 금속 하드웨어는 건축을 위한 견고함(firmitas), 유용성(utilitas), 아름다움(venustas)과 상반되는 경쾌함, 경제성, 평범함을 상징한다. 그것은 아직 깨어지지 않은 설계자의 꿈을 이루어 줄 열쇠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구매처: 알라딘

Thursday, November 1, 2018

CC : COPY CAT

CC COPY CAT Superellipse Books 2016-2017 Seoul


CC
판형 130*180*35
초판 1쇄 펴냄 2017년 6월 30일
저자 강정석, 길형진, 김건호, 김영준, 김형재, 깡통, 듀나, 박준수, 박세진, 복길, 유진, 이상우, 정현, 초타원형 출판, 최재형, 최준혁, 최효기, 팝콘, 한소휘, 홍은주, Danjyon Kimura, EH(김경태)
기획 정현
편집 손영민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 (유연주 도움)
인쇄 으뜸프로세스
펴낸이 정현
펴낸곳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
출판등록 2012년 8월 3일 제 2012-000267호

본 출판물의 저작권 및 판권은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에 있으며,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법에 의해
무단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Copyright © Superellipse Books. 2017. Printed in Seoul, Korea.
ISBN 979-11-953312-8-4-03810

KRW 80,000



CC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징을 네 권의 책으로 담아내는 건축가 정현의 기획명이자 시리즈 마지막 책 제목이다. 

1997년의 가을, 언젠가 사라질 여의도의 건물을 기록하려던 것에서 출발했던 『CC』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7년이 되어서야 실행되었다. 기획안이 구체화된 시기는 정현의 첫 저서였던 『PBT』 출간 후 1년이 지난 2015년 가을이다. 당시 그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물 옥상에서 본 기획에 참여하는 디자이너, 편집자와 함께 책을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바로 무심하게 모든 것을 담아 버리는 프레임 구조, 차원을 넘나드는 콘텐츠, 이질적인 것들의 집합 상태, 변형하는 규칙으로 만들어진 건물 같은 책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후 1년간 SNS로 수많은 사람들과 책의 기획안을 공유하여 글과 그림 등을 모아 왔으며, 그 형식과 내용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자신이 사는 공간과 사라진 도시 속 공간들에 관한 낙서, 건축가, 철학자들의 인용문, 짧은 소설과 등장인물, 학창 시절 친구들의 글, 서시, 이미지 도판, 도표, 온라인상에 떠도는 소문들, 그리고 고양이 이미지 등 갖가지 콘텐츠가 쌓였다. 하지만 도시 계획과 그 실행 과정이 그러하듯, 이러한 무질서한 콘텐츠를 엮어 낼 때 일부는 갑자기 사라지거나 변형되거나, 왜곡되거나, 위계가 역전되는 등 예측하기 힘든 양상을 드러낸다. 따라서 발행인은 콘텐츠와는 무관하게, 단지 남겨진 형식과 프레임만 가지고도 유기적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생산될 수 있도록 책의 스타일을 구조화하기를 원했다. 이에 대응하여 그래픽 디자이너 홍은주와 김형재는 개념을 구현할 때 맞닥뜨리는 페이지 형식과 같은 매체적 특징을 훨씬 더 강조하거나 과감히 은폐한 결과물로서의 책을 디자인했다.

『CC』는 130×180×35라는 특정한 크기와 두께로 설정되었다. 흔히 우리가 책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무게나 형태를 약간 벗어난 규격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보자마자 묵직한 사전을 떠올릴 것이고, 또 다른 이들은 90년대 무단 복제되던 만화책 단행본의 추억에 잠길 수도 있다. 양장 제본된 이 책은 경건하게 받아들여야 할 종교 서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딱딱해 보이지만 가벼운 내용의 텍스트나 맥락 없는 콘텐츠가 담겨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법한 크기와 부피에 대해 정현은 “『CC』는그동안 내가 해 왔던 출판물처럼, 마치 ‘책 같은 것’을 극한까지 추구한 것(*)이다.” 라고 대답한다.

책을 감싸는 앞 뒷면의 금박 글자, 남산서울타워와 롯데월드타워라는 두 거대 기념물 건축 브로마이드, 액자식 구성, 이미지와 텍스트의 분명한 구분, 또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완전한 융합, 파노라마 삽지, 흑백과 컬러의 조합, 가짜 질료성, 파손되기 쉬운 약한 재질 등 정교하게 설정된 모든 요소들은 『IMG』, 『BGIMG』, 『AIR』 세 권의 책을 제작하면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전체 인상과 달리 부분적으로 이질적인 조합들이 맞닿아 있는 내부에는 규칙성을 찾기 어려운 숫자들이 놓여 있다. 숫자들은 긴 계획 과정을 드러내기 위한 지표로서 잊힌 과거의 기록, 또는 몇 가지 가능성 있는 미래를 암시한다. 

최초의 디자인 회의에서 『CC』는 ‘그저 텅 빈 방 한가운데 놓일 법한 130×180×35밀리미터의 아름다운 오브젝트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오랜 시간 끝에 완성된, 붉은색으로 양장 제본된 인쇄물의 밀도와 무게감은 그동안 독립 출판에서 보이던 전형성을 기대하는 이들의 예상을 비껴 나간다. 2017년 현재, 책방과 커피숍, 쇼핑몰과 자본/반자본이 합성된 서울의 기묘한 공간들은 모든 책을 블랙홀처럼 빠르게 흡수하다 못해 압착시키려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CC』는 이 변화의 흐름과 급격한 속도에 반발하며 오래된 책의 정교한 복각판, 또는 인터뷰나 사료 등이 잔뜩 추가되고 리디자인된 한정판 책의 재현물과 같은, 익숙한 책의 모습으로 중심의 텅 빈 공간을 향해 천천히 조금씩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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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후기, 윤원화(37세, 서울 거주)(**)  

CC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4권의 책을 보는 데에 딱히 정해진 방법은 없다. 이를테면 이것은 대략 130×180×35mm 크기의 입방체 4개이기도 하다. 책을 보관하는 공간이 한정된 독자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크기다. 심지어 책을 읽기도 하는 독자라면 책을 작두로 썰어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책에 들어가는 낱낱의 이미지와 텍스트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책이 이렇게 크고 두껍게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 위아래 여백을 쳐내고 반복되는 페이지를 잘라내면 현재 부피의 절반 가까이 살이 빠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축소된 형태의 4층 책탑은 나에게 작고 익숙한 만족감을 줄 것이다. 책 더미에서 불필요한 것을 솎아내어 공간을 발굴하는 것은 나의 일상적인 투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IMG』와 『BGIMG』와 『AIR』와 『CC』는 그렇게 확보된 귀중한 공간에 원래 크기 대로 들어갔다.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소비자로서 본전 생각이 나서 그럴 수도 있고, 이 책들에 투여된 거의 부조리한 분량의 돈과 시간과 노동과, 그것이 실체화된 3kg 상당의 덩어리가 가진 고유의 존재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비논리적 크기는, 모든 견고해질 기회도 없었던 것들이 녹아 사라지는 세계에서 태동한 하나의 생존 전략으로 봐야할 것이다. 

어떻게 공간을 확보하고 그것을 무엇으로 채우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각자의 집 또는 방을, 또는 도시 전체를 타임랩스 영상으로 기록한다면, 세상은 그런 삼차원 테트리스의 게임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포켓코인으로 포켓몬 박스를 업그레이드 해서 더 많은 포켓몬을 담는다. 또는 가족이 늘어나서 집을 키운다 (옛 속담에 30대는 30평, 40대는 40평, 50대는 50평이라 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대체로 물건을 줄이는 길을 택해 왔다. 어디까지가 천성이고 어디까지가 환경의 산물인지는 모른다. 납작한 아파트 실내에 차곡차곡 쌓여서 천천히 변색되는 물건들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꼈던 유년기의 영향일 수도 있고, 2년 단위로 방에서 방으로 옮겨 다녔던 이십대의 습관이 남았을 수도 있다.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최대한 많은 도구와 자료를 컴퓨터 안으로 쓸어담기로 결심했고, 컴퓨터를 바꿀 때마다 데이터 백업을 하지 않고 장비 일체를 폐기했다. 많은 책을 샀고 많은 책을 버렸다. 그럼에도 너무 많은 책이 남아서 이제는 아마도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잡초가 무성한 작은 정원 같은 것을 이루고 있다. 

CC의 책들은 책장 맨 아래 독립출판 섹션으로 들어갔다. 판형이 제각각이라 매년 솎아내고 즉흥적으로 재배치하기를 반복하는 곳이다. 크고 넙적한 책들은 나른하게 휘어지고 표지가 없는 책들은 본문이 구겨지고 손바닥보다 작은 책들은 틈새로 달아나는 작은 밀림 같은 곳에서, CC는 지구라트처럼 서 있다. 그러니까 일단은 납득을 하게 된다. 

내 책장이 일종의 시공간 복합체인 것처럼 CC 역시 그렇다. 다시 말해 이 불균질한 기호적 체계는 시간 속에서 볼 수도 있고 공간 속에서 볼 수도 있다. 시간 속에서 CC의 역사는 모호하고 의심스럽다. 텀블벅에서 CC 프로젝트가 공개된 것은 2016년 5월이었다. 당시 판상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건축가 정현은 텀블벅 인터뷰에서 CC 프로젝트를 그가 서울을 떠나 있었던 지난 10여 년, 다시 말해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의 서울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설명했다. 이 시기는 서울이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되고 스마트폰으로 매개되어 다양한 물리적 이벤트로 출력되고 다시 네트워크로 되먹임되는 방대한 피드백 회로가 형성되던 때다. 그 일부를 인터넷으로 따라가면서 축적된 데이터와 기억을 바탕으로, CC는 백업되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깨끗이 지워지지도 않고) 끊임없이 갱신되는 현상의 모음으로서 서울의 어떤 모형 또는 기록 보관소의 디자인 제안이 되고자 했다. 이것이 어느 정도나 거대한 야망인지 나는 설명할 자신이 없다. 혹시나 무제한의 용량와 처리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있어서 모든 것을 수집하고 편집한다면 모를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획 같았다. 그러니까 『CC』가 인공지능 복제 고양이 CC와 그의 인간 오퍼레이터 TR이라는 면적 없는 두 점 사이에서 구성된 것은 거의 필연이지만, 이 책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생산되지 못한 것 또한 돌이켜 보면 거의 피할 수 없었던 일처럼 여겨진다. 

『CC』는 출간 예정일이었던 2016년 10월까지 제작되지 못했고, 원래 별책부록으로 소개되었던 『IMG』와 『BGIMG』만 11월에 미리-늦게 출간되었다. 귀여운 고양이의 서울 유람기 같은 것을 기대했던 일반 후원자에게, 반복되는 강의록과 부서진 도판으로 이루어진 파본 같은 책은 대체로 어처구니없이 보였을 것이다. “운명의 2016년”이 오면 CC가 자신의 복제된 생에서 로그아웃해 영생을 얻고 TR은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시나리오는 하나의 꿈이었다. 상자에서 시작해서 상자로 끝나는 상자 형태의 꿈. 2017년 6월에 뒤늦게 종결된 『CC』의 한 장에서 CC는 “흘러내리지 않고 몸이 꽉 끼는 상자의 편안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상자의 이미지는 하얀색 입방체 형태의 인형뽑기 기계가 끝없이 이어지는 하얀 방으로 연결되고, 무인양품과 그것을 카피한 자주 브랜드에 대한 상념으로, 다시 종이 상자로 만들어진 고양이 아파트의 사진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장에서는 CC가 서울의 모든 건물들이 “흰색 상자로 변하는 장면을, 혹은 검은색 공간으로 녹아들어가는 장면을 천천히 지켜보았”던 기억이 언급된다. 그것은 달리는 차 안에서 눈 쌓인 서울을 촬영한 흑백의 수많은 사진들로 이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CC의 죽음과 사후에 대한 TR의 이야기가 아주 오래 전 일처럼 반추된다. TR은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쓴다. “그는 전뇌 공간의 느낌이 마음에 드는 상자 안에 꽉 끼어 있는 것처럼, 마치 천국과 같이 편안하다고 했지만 실제론 중세 종교화의 천국도처럼 지옥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2017년 연말에 트위터에서 지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는 것은 인간이 만든 가상현실이라는 요지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논리적으로는 그에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해가 바뀐다는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인간은 자신의 수명을 견디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원래는 CC의 죽음도 그렇게 가상적이지만 실효성 있는 명목상의 분절로서 고안되었을 것이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타임라인에 절취선을 긋고, 일정 시간의 타임라인 전체를 스크랩해서 임의로 조각내고 이어붙여 공간적으로 재배치한 근과거의 파노라마 앞에 섰을 때, 그래서 타임라인에 집어삼켜지지 않고 그것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 바깥의 외부적 시점을 확보했을 때. 이처럼 시간 속의 세계를 전망의 대상으로 재구축하는 것은 『IMG』에서 “현대의 보는 방법” 또는 “21세기의 창문”으로, 이미지 제작자에게 주어진 “또 다른 돌파구”로, 또는 이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현실을 고쳐 그리려는 어떤 “진실된 허구의 기록”으로 제시된다. 이것이 『BGIMG』에서 해체되고 『AIR』에서 연습되고 『CC』에서 상연된다. 그러나 앞서 나는 『CC』가 완결된 것이 아니라 종결되었다고 썼다. 로그아웃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트위터의 웃기는 계정이 현실 세계의 대통령으로 치환됐을 때, 또는 트위터의 멋있는 계정이 현실 세계의 위험인물로 반전됐을 때. 현실과 가상이 만나는 흐릿한 경계에서 파도를 타던 타임라인의 위태로운 균형이 무너지면서, 기호의 세계가 총체적인 정화의 요구에 직면했을 때.  

하나의 가설을 생각해 보자. 이를테면 CC는 애초에 상자 속에서 배양된 고양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상자에 최적화된 완벽한 식빵 모양으로 자라난다. 그것은 상자 안에서 살기에 적합한 패턴을 도출하고 다시 그에 적합한 상자의 형태를 고안하면서 최적화의 나선을 그린다. 이 나선은 처음에는 아주 크게 돌고 아주 멀리 나아가지만 점점 더 작은 원을 그리고 점점 더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서 최종적으로 어느 한 점에 수렴할 것이다. 그것이 예견된 CC의 죽음이다. 그것은 일종의 특이점인데, 왜냐하면 CC로서는 그 이후를 내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시간 속에서 움직일 필요가 없는 세계가 열리는지, 아니면 시간 속에서 더 이상 움직일 여지가 없는 세계가 열리는지, 그 세계에서 자신이 어떤 형태로 존재할지, 또는 존재하기를 멈출지, CC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CC는 그 지점에 다다르는 것을 피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CC는 상자 안에 꽉 끼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CC는 전력을 다해 서둘러서 죽음의 순간을 향해 던져지는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조금 늦게, 상자 안에 든 살짝 무거운 몸체가 되어 여기저기로 배달되었다. 그중 한 세트가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빨간색, 주황색1, 주황색2, 연두색의 포스트잇 21개를 붙이고. 표지의 금박은 벌써 조금 벗겨지기 시작했다. 

원한다면 나는 이 책들에서 시간의 남은 잔향을 거두고 정념을 표백해서 흰 뼈 같은 공간적 배치만 남길 수도 있었다. 그 또한 CC를 보는 한 가지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또 하나의 가설을 생각해 보자. 아마도 CC가 죽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CC』의 등장인물 소개에서 CC는 복제 이후에만 4번 죽었다고 이야기되는데, 이것은 꽤 현실적인 숫자다. 종종 죽음과 전생이 끼어들곤 하는 시간은 연대기 순으로 나열하는 것에 크게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단순히 공간화한다고 구제되지도 않는다. 나는 가끔 뒤뜰에 앉은 미국인처럼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뒤뜰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인데) 내가 쌓아올린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책장은 내 의자를 거의 파노라마처럼 에워싸고 있다. 지하와 지상이 있고, 장벽이 있고, 임시 가설물이 있고, 움직이는 섬들이 있고,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둥들이 있다. 장벽은 세 겹으로 이루어졌고, 가장 깊은 겹에는 내가 이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아주 오래된 것들이 잠자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서울의 한국사가 있고, 가장 낮은 곳에는 2010년대 서울의 사료 또는 기념품들이 있으며, 그 사이에는 창문의 시체들이 산처럼 높이 쌓여 있다. 그것을 거슬러 오르는 경로를 찾을 때까지, CC는 맨 아래층 오른쪽 끝에 위치할 예정이다. 

(*) 2017년 12월 6일, 연세대학교 성암관 3층 갤러리 강의에서.
(**)윤원화 / 시각문화 연구자. 저서로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문서는 시간을 재/생산할 수 있는가』, 역서로 『광학적 미디어』, 『기록시스템 1800/19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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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사진: 김경태, 2018
구매처: http://superellipse.net

Wednesday, October 31, 2018

AIR : 비어있는 중심

총 4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CC 프로젝트에서 AIR의 역할은 중심이 사라진 공간에 세워질 새로운 기둥. 그러나 그것은 언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IMG
판형 130*180*35
초판 1쇄 펴냄 2017년 6월 30일
저자 곽형준, 김병조, 김태용, 김효진, 먼데이스튜디오, 선정우, 소린, 송락현, 이윤성, 이진, 정석예, 정현, 천계영, 탁상, 하성호, 황인찬, 레토 라윤 휘얼리만
기획 정현

편집 손영민
디자인 김병조
인쇄 으뜸프로세스
펴낸이 정현
펴낸곳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
출판등록 2012년 8월 3일 제 2012-000267호

본 출판물의 저작권 및 판권은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에 있으며,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법에 의해
무단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Copyright © Superellipse Books. 2017. Printed in Seoul, Korea.
ISBN 979-11-953312-7-7-03680

KRW 60,000

총 네 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CC 프로젝트 중 세 번째 책 『AIR』는 CC 프로젝트의 중심에 세워지는 기둥 역할을 담당한다. 그 내용은 1~4세대 한국 오타쿠의 역사 기록물을 표방하며, 형식적으로 한 권의 책이 네 번 반복되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단순히 개념적으로 대칭하는 수준을 넘어, 읽는 방식과 페이지 넘김 순서까지 정확하게 대칭으로 계획되었다. 즉, 책은 좌에서 우로(A-B). 또한 우에서 좌로(D-C) 읽을 수 있다. 네 번 반복된 콘텐츠가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다. 각각의 책에 사용된 페이지 번호 표기 방식과 폰트는 조금씩 다르고, 디자이너 김병조와 발행인 정현의 서문은 네 번 반복된 책에 나뉘어 연재된다. 따라서 거의 유사해 보이는 중심 구조와 바깥은 계속 변하며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CC의 다른 프로젝트들처럼 『AIR 』역시 130×180×35  밀리미터 라는 정해진 규격에 맞춰 제작되었다. 하지만 『IMG』, 『BGIMG』에서 계획과 제작 방식의 불일치, 제작 현실의 벽이라는 부분이 강조되었다면, 『AIR』는 과연 이것이 현실인지 가상의 제작 이미지인지 헷갈릴 정도의 정교함을 강요받았다. 완벽에 가까운 계획과 실천으로 구축된 실체, 그러나 읽는 이들 그 누구도 알아봐 주지 않는 강박증. 『AIR』가 추구하던 바는 그야말로 “타이포그래피 오타쿠”의 동인지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만화, 애니메이션 오타쿠들의 관심사와는 또 다른 세계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유사하다.

발행인의 서문에 따르면, 『AIR』는 바로 그 현장, 그 시절 중소기업여의도종합전시장의 에어돔(Air Dome) 구조 아래 행사장을 대리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가상 공간을 책으로 재현한다. 글은 그래픽 디자이너 김병조에 의해 거의 장식이 배제된 듯 엄격하게 구성된 레이아웃과 타이포그래피에 의해 담겨지지만, 그러한 법칙의 엄밀함 속에서 각 저자의 참고 문헌, 문장 부호나 주석의 사용, 이미지 레퍼런스의 상이한 특징이 더욱 드러나는 효과를 갖게 된다. 마치 일렬로 배열된 전시 배치도에서는 그저 숫자로만 드러나던 정보가 회장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오색찬란한 캐릭터 입간판으로 뒤덮여 버리는 오타쿠 행사장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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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 외부에는 당연히 수많은 이스터에그가 숨겨져 있다. 그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1) 책의 중심에는 열화된 중소기업여의도종합전시장의 사진이 있다. 한국 오타쿠들에게는 추억의 공간이자 역사적 상징물로서, 이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책을 어린 시절 교과서나 전과를 나누듯 잘라 내면, 중소기업여의도종합전시장의 에어돔 공간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이는 다카하타 이사오의 영화 〈추억은 방울방울〉을 패러디한 『AIR』의 부제, 「기둥 없는 공간은 방울방울」을 의미한다.
2) 『AIR』는 갱지 같은 저가의 회색 종이에 인쇄한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백색 종이에 회색을 덧씌운 것이다. 이런 과정은 책에 삽입된 이미지들의 백색이 드러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디자이너 김병조에 의하면, 회색은 메인 프로젝트인 『CC』와 테마를 연결하기 위해 선택한 것으로, 서울의 공기 상태­―미세먼지로 가득 찬―를 상징하는 색상이다. 또한 콘크리트 블록처럼 보이는 외관은 에어돔과 대비되는 서울의 콘크리트 건축물을 상징하기도 한다. 
3) AIR의 회색은 컬러 인쇄이다. 따라서 올컬러로 제작된 『AIR』가 CC 프로젝트 책 네 권 중 제작비 대비 페이지 단가가 가장 높다.
4) 모든 이미지와 폰트들은 있는 그대로 사용되지 않고 디자이너 김병조에 의해 변형되었다. 디자이너 김병조가 공개한 동영상에서 그 제작 과정을 확인해 볼 수 있다.(*)
5) 책의 표지를 벗기면 책등에 숨겨진 메시지가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자신의 고향 초등학생들에게 수업했던 내용의 일부를 영문 번역한 것이다.다.
"But in what we call "real world," things aren't so black and white…"(**) 

(*) https://youtu.be/HKh3R66V2TQ
(**) "그러나 우리가 부르는 "진짜세계"는, 단지 흑과 백만 있는게 아니야..."

2021년 12월 12일 AIR의 디자인을 맡았던 김병조 디자이너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전 고인께서 초타원형의 책과 AIR, 그리고 AIR를 활용한 여러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초타원형 대표와 이하 모든 일원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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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사진:김경태, 2018
구매처: http://superellipse.net



Monday, December 5, 2016

IMG / BGIMG : 부분과 허구의 진실

2016년 11월 28일 발행된 『IMG』/『BGIMG』는 초타원형 출판(*)의 두 번째 프로젝트 『CC』의 별책부록이다.

IMG
판형 130*180*35
초판 1쇄 펴냄 2016년 11월 28일
저자 정현
기획 정현
편집 손영민
디자인 배민기
인쇄 인타임
펴낸이 정현
펴낸곳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
출판등록 2012년 8월 3일 제 2012-000267호

본 출판물의 저작권 및 판권은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에 있으며,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법에 의해
무단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Copyright © 초타원형. 2016. Printed in Seoul, Korea.
ISBN 979-11-953312-5-3-03600

KRW 60,000

BGIMG
판형 130*180*35
초판 1쇄 펴냄 2016년 11월 28일
사진 EH(김경태)
기획 정현
편집 손영민
디자인 배민기
인쇄 인타임
펴낸이 정현
펴낸곳 Superellipse Books(초타원형)
출판등록 2012년 8월 3일 제 2012-000267호

본 출판물의 저작권 및 판권은 Superellipse Books(초타원형)에 있으며,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법에 의해
무단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Copyright © 초타원형. 2016. Printed in Seoul, Korea.
ISBN 979-11-953312-6-0-03660

KRW 60,000

CC 프로젝트는 총 네 권의 책이다. 『IMG』/『BGIMG』는 본 프로젝트의 주축이자 모든 책의 내용을 이어 주는 다리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의미와 양식, 형태와 콘텐츠가 언제든 하나의 좌표축으로 수렴 가능한 21세기 현대, 이미지와 텍스트를 설명하는 『IMG』가 한편에 놓인다. 바로 맞은 편에 예시 도판과 사진 페이지, 그리고 숫자로 이루어진 『BGIMG』가 펼쳐진다. 두 책은 제목과 형식이 거울상을 이룬다. 주체와 세계를 상징하는 거울상의 제목, 뻔한 유광 컬러 아트지와 무광 모조 내지―무광 컬러 표지와 유광 컬러 표지―가 질료와 색상의 거울상이라면, 이미지에 대한 내용임에도 단지 텍스트만 존재하는 공간, 도판을 압도하는 페이지 넘버, 서지 정보와 같은 부가 정보 등 스케일이 역전된 구성은 바로 구조-프로그램의 거울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정현은 그래픽 디자이너 배민기와 함께 새롭게 창조되었다기보다는 이전부터 주어진 것들, 어쩔 수 없이 고안된 것들, 과거와 현재의 양식들이 뒤섞여 혼돈에 빠진 디지털 세계―무시간성, 무질료성, 임의의 형태와 스케일의―를 다시 미래를 위한 좌표와 시간에 가두어 보는 최초의 프레임을 고안한다.

초타원형 출판의 전작 『PBT』에서 이미지를 숫자화된 공간에서 축조해 보려는 설계자의 시선이 엿보인다면, 『IMG』/『BGIMG』에서 드러나는 시선은 질서 있는 배열 위로 반복되는, 오류와 한계가 뒤틀어 버린 현실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것들의 끝없는 나열, 얇은 피막과 같은 것들로 둘러싸인 두터운 공간, 단단하지만 또한 부스러질 정도로 약한 것, 추상적이지만 구체적인 것… 이 모든 것들이 담기는 현실이란 무분별, 무차별하다. 인간의 시선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압도적 세계상에는 단지 일부만을 담아내는 매체와 도구를 통한 관찰자의 시선만 있을 뿐”이라 주장하는 저자의 말처럼, 이미지와 텍스트는 사진과 책과 전자 공간과 같은 매체로 연속 전이되며 필연적으로 진실과 멀어진다. 하지만 현실의 한계를 드러내는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진실”을 담아낼 기회일지도 모른다.

CC 프로젝트는 불연속적으로 반복 배열된 “부분의 진실”이 압축되며 합성된, “허구의 진실”을 다루고 있다. 『IMG』/『BGIMG』는 바로 그 세계를 포착하는 새로운 카메라 렌즈, 혹은 촬영 방식과도 같다. ‘130×180 밀리미터로 설정된 프레임이 겹쳐지면 35 밀리미터의 두께를 가져야 한다.’ 규칙과 숫자들은 불변이며 최종 완성을 약속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축소되고 늘어지거나 압축되며 뒤틀어져 버릴 것이다. 계획은 실현될 수 있을까? 마지막의 최후, 최후의 마지막까지 보존할 수 있는 진실이란 처음 계획 안에서 과연 얼마만큼을 차지할까?

 (*)2012년 설립된 초타원형 출판은 크고 작은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독립출판사이다. 2014년 출간한 『PBT』를 시작으로, 특정 지역 건물을 다룬 『HLVT』, 뒤섞인 가짜(진짜?) 맥락 속 건물 이야기 『CC』, 당대 건축 이미지 재현 신방법론을 다룰 『ISBN』을 3년에 걸쳐 내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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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사진: 김경태, 2018
구매처: http://superellipse.net

Thursday, July 7, 2016

PBT PBT : 테스트 테스트

특별한 띠지와 함께 발매된 PBT 2쇄

2014년 12월 28일에 발간되어 디자이너, 예술가 들의 입소문을 타고 독립출판물 분야에서 회자되었던 초타원형 출판(*)의 『PBT(포토샵 브러시 텍스트)』가 2쇄를 발행하게 되었다. 첫 출간 때와 같이 소셜 펀딩 서비스 “텀블벅”을 통해 2쇄의 제작비를 후원받았으며, 1쇄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오탈자와 이미지를 바로잡고 일부 다이어그램을 수정하여 제작했다. 독립출판물로서도, 소셜펀딩으로서도 같은 책을 재생산하고, 재후원받는 일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저자는 완전히 똑같은 책으로 후원받는 대신, 2쇄 후원자들을 위한 특별한 띠지를 약속했다. 그것은 1쇄의 후원자이기도 한 윤원화(**)의 『PBT』 소개글이다.
띠지는 1쇄와 똑같은 책의 표지 위로 차례에도 언급되지 않은 -2 챕터 에세이 「한 후원자의 회신」을 담고 있다. 회신 첫 문장에서 윤원화는 『PBT』란 과연 무엇에 관한 책인지 질문한다. 그리고 차곡차곡 쌓여 가는 『PBT』의 페이지들이 만든 3차원 형태, 책의 형상을 마치 건축물을 분석하듯 챕터와 인용구를 넘나들며 해석한다. 그는 『PBT』의 세계를 위태롭고 어지러운 시대를 돌파해 보려는 젊은 건축가의 필연적인 선택으로 바라본다. 『PBT』의 저자가 어지럽게 놓인 미로/미궁을 공략하기 위해 설정된 주인공이라면, 띠지는 그런 주인공의 궤적을 좇아 세계를 조각이불처럼 이어 붙여 바라보는 공략본인 셈이다. 실제 게임 공략본처럼, 에세이는 본체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옆에 놓일 수 있다. 다소 구차한 광고 문구나 장식적 효과를 위한 것으로만 여겨졌던 띠지라는 형식이 새로운 글이 놓일 공간으로 활용된다. 책의 겉표지와 미묘하게 다른 색, 투명성, 길이의 띠지는 웹 브라우저나 대형 스마트폰, 타블렛으로 읽는 디지털 문서의 현실화이다. 스크롤처럼 연속적이며 코팅되어 본연의 재질감을 상실하고 매끄러워진 동시에, 앞 뒷면이 존재하는 얇은 스킨이다. 또한 그 자체로 책과 비슷한 형태로 세워 볼 수 있는, 불안하고 유연한 구조물이기도 하다.

『PBT』의 디자인을 맡았던 디자이너 김동휘는 이번 2쇄에서 1쇄와는 전혀 다른 레이어를 입히기 위해 새로 추가된 에세이를 90도 회전한 방향으로 배열하여 기존 책을 감싸는 방법을 택한다. 띠지 표면 위에서 방향을 상실한 글씨는 읽기 위한 본문이라기보다는 미려한 텍스처이다. 그 결과 새로운 텍스처가 입혀진 2쇄는 세로쓰기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은 유지한 채, 가로쓰기에 최적화된 한글 폰트의 표정을 그대로 간직한 기묘한 얼굴이 되었다. 1쇄가 마치 건물의 입면과 같은 도안으로 책에서 느껴지는 스케일을 숨기려 했다면, 2쇄는 『PBT』 설명 글을 이용해 크기와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 책등의 제목과 뒷면의 바코드는 흐르는 패턴 위에 이질적으로 삽입되어 있어, 레이어가 과거 『PBT』 1쇄의 위에 얹혀져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PBT』 1쇄의 흔적들은 오래된 지층 속에 갇혀 시대를 알려 주는 화석보다는, 끊임없이 흐르는 물에서 채취한 사금처럼 순간적인 현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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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설립된 초타원형 출판은 크고 작은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독립출판사이다. 2014년 출간한 『PBT』를 시작으로, 특정 지역 건물을 다룬 『HLVT』, 뒤섞인 가짜(진짜?) 맥락 속 건물 이야기 『CC』, 당대 건축 이미지 재현 신방법론을 다룰 『ISBN』을 3년에 걸쳐 내놓을 예정이다.

(**) 저술가, 번역가. 『청취의 과거』, 『광학적 미디어』, 『기록 시스템 1800/1900』 등을 번역했다. 2012년부터 미술과 시각문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여 『퍼블릭 아트』, 『아트인컬처』, 『도미노』 등의 잡지에 기고하고 있다. 2014년 일민미술관에서 아카이브 전시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를 공동 기획했다. 2016년 워크룸 프레스에서 첫 저서인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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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사진: 김경태, 2018
포스팅이미지: 정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