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1, 2018

CC : COPY CAT

CC COPY CAT Superellipse Books 2016-2017 Seoul


CC
판형 130*180*35
초판 1쇄 펴냄 2017년 6월 30일
저자 강정석, 길형진, 김건호, 김영준, 김형재, 깡통, 듀나, 박준수, 박세진, 복길, 유진, 이상우, 정현, 초타원형 출판, 최재형, 최준혁, 최효기, 팝콘, 한소휘, 홍은주, Danjyon Kimura, EH(김경태)
기획 정현
편집 손영민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 (유연주 도움)
인쇄 으뜸프로세스
펴낸이 정현
펴낸곳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
출판등록 2012년 8월 3일 제 2012-000267호

본 출판물의 저작권 및 판권은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에 있으며,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법에 의해
무단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Copyright © Superellipse Books. 2017. Printed in Seoul, Korea.
ISBN 979-11-953312-8-4-03810

KRW 80,000



CC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징을 네 권의 책으로 담아내는 건축가 정현의 기획명이자 시리즈 마지막 책 제목이다. 

1997년의 가을, 언젠가 사라질 여의도의 건물을 기록하려던 것에서 출발했던 『CC』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7년이 되어서야 실행되었다. 기획안이 구체화된 시기는 정현의 첫 저서였던 『PBT』 출간 후 1년이 지난 2015년 가을이다. 당시 그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물 옥상에서 본 기획에 참여하는 디자이너, 편집자와 함께 책을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바로 무심하게 모든 것을 담아 버리는 프레임 구조, 차원을 넘나드는 콘텐츠, 이질적인 것들의 집합 상태, 변형하는 규칙으로 만들어진 건물 같은 책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후 1년간 SNS로 수많은 사람들과 책의 기획안을 공유하여 글과 그림 등을 모아 왔으며, 그 형식과 내용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자신이 사는 공간과 사라진 도시 속 공간들에 관한 낙서, 건축가, 철학자들의 인용문, 짧은 소설과 등장인물, 학창 시절 친구들의 글, 서시, 이미지 도판, 도표, 온라인상에 떠도는 소문들, 그리고 고양이 이미지 등 갖가지 콘텐츠가 쌓였다. 하지만 도시 계획과 그 실행 과정이 그러하듯, 이러한 무질서한 콘텐츠를 엮어 낼 때 일부는 갑자기 사라지거나 변형되거나, 왜곡되거나, 위계가 역전되는 등 예측하기 힘든 양상을 드러낸다. 따라서 발행인은 콘텐츠와는 무관하게, 단지 남겨진 형식과 프레임만 가지고도 유기적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생산될 수 있도록 책의 스타일을 구조화하기를 원했다. 이에 대응하여 그래픽 디자이너 홍은주와 김형재는 개념을 구현할 때 맞닥뜨리는 페이지 형식과 같은 매체적 특징을 훨씬 더 강조하거나 과감히 은폐한 결과물로서의 책을 디자인했다.

『CC』는 130×180×35라는 특정한 크기와 두께로 설정되었다. 흔히 우리가 책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무게나 형태를 약간 벗어난 규격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보자마자 묵직한 사전을 떠올릴 것이고, 또 다른 이들은 90년대 무단 복제되던 만화책 단행본의 추억에 잠길 수도 있다. 양장 제본된 이 책은 경건하게 받아들여야 할 종교 서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딱딱해 보이지만 가벼운 내용의 텍스트나 맥락 없는 콘텐츠가 담겨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법한 크기와 부피에 대해 정현은 “『CC』는그동안 내가 해 왔던 출판물처럼, 마치 ‘책 같은 것’을 극한까지 추구한 것(*)이다.” 라고 대답한다.

책을 감싸는 앞 뒷면의 금박 글자, 남산서울타워와 롯데월드타워라는 두 거대 기념물 건축 브로마이드, 액자식 구성, 이미지와 텍스트의 분명한 구분, 또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완전한 융합, 파노라마 삽지, 흑백과 컬러의 조합, 가짜 질료성, 파손되기 쉬운 약한 재질 등 정교하게 설정된 모든 요소들은 『IMG』, 『BGIMG』, 『AIR』 세 권의 책을 제작하면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전체 인상과 달리 부분적으로 이질적인 조합들이 맞닿아 있는 내부에는 규칙성을 찾기 어려운 숫자들이 놓여 있다. 숫자들은 긴 계획 과정을 드러내기 위한 지표로서 잊힌 과거의 기록, 또는 몇 가지 가능성 있는 미래를 암시한다. 

최초의 디자인 회의에서 『CC』는 ‘그저 텅 빈 방 한가운데 놓일 법한 130×180×35밀리미터의 아름다운 오브젝트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오랜 시간 끝에 완성된, 붉은색으로 양장 제본된 인쇄물의 밀도와 무게감은 그동안 독립 출판에서 보이던 전형성을 기대하는 이들의 예상을 비껴 나간다. 2017년 현재, 책방과 커피숍, 쇼핑몰과 자본/반자본이 합성된 서울의 기묘한 공간들은 모든 책을 블랙홀처럼 빠르게 흡수하다 못해 압착시키려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CC』는 이 변화의 흐름과 급격한 속도에 반발하며 오래된 책의 정교한 복각판, 또는 인터뷰나 사료 등이 잔뜩 추가되고 리디자인된 한정판 책의 재현물과 같은, 익숙한 책의 모습으로 중심의 텅 빈 공간을 향해 천천히 조금씩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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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후기, 윤원화(37세, 서울 거주)(**)  

CC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4권의 책을 보는 데에 딱히 정해진 방법은 없다. 이를테면 이것은 대략 130×180×35mm 크기의 입방체 4개이기도 하다. 책을 보관하는 공간이 한정된 독자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크기다. 심지어 책을 읽기도 하는 독자라면 책을 작두로 썰어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책에 들어가는 낱낱의 이미지와 텍스트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책이 이렇게 크고 두껍게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 위아래 여백을 쳐내고 반복되는 페이지를 잘라내면 현재 부피의 절반 가까이 살이 빠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축소된 형태의 4층 책탑은 나에게 작고 익숙한 만족감을 줄 것이다. 책 더미에서 불필요한 것을 솎아내어 공간을 발굴하는 것은 나의 일상적인 투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IMG』와 『BGIMG』와 『AIR』와 『CC』는 그렇게 확보된 귀중한 공간에 원래 크기 대로 들어갔다.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소비자로서 본전 생각이 나서 그럴 수도 있고, 이 책들에 투여된 거의 부조리한 분량의 돈과 시간과 노동과, 그것이 실체화된 3kg 상당의 덩어리가 가진 고유의 존재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비논리적 크기는, 모든 견고해질 기회도 없었던 것들이 녹아 사라지는 세계에서 태동한 하나의 생존 전략으로 봐야할 것이다. 

어떻게 공간을 확보하고 그것을 무엇으로 채우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각자의 집 또는 방을, 또는 도시 전체를 타임랩스 영상으로 기록한다면, 세상은 그런 삼차원 테트리스의 게임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포켓코인으로 포켓몬 박스를 업그레이드 해서 더 많은 포켓몬을 담는다. 또는 가족이 늘어나서 집을 키운다 (옛 속담에 30대는 30평, 40대는 40평, 50대는 50평이라 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대체로 물건을 줄이는 길을 택해 왔다. 어디까지가 천성이고 어디까지가 환경의 산물인지는 모른다. 납작한 아파트 실내에 차곡차곡 쌓여서 천천히 변색되는 물건들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꼈던 유년기의 영향일 수도 있고, 2년 단위로 방에서 방으로 옮겨 다녔던 이십대의 습관이 남았을 수도 있다.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최대한 많은 도구와 자료를 컴퓨터 안으로 쓸어담기로 결심했고, 컴퓨터를 바꿀 때마다 데이터 백업을 하지 않고 장비 일체를 폐기했다. 많은 책을 샀고 많은 책을 버렸다. 그럼에도 너무 많은 책이 남아서 이제는 아마도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잡초가 무성한 작은 정원 같은 것을 이루고 있다. 

CC의 책들은 책장 맨 아래 독립출판 섹션으로 들어갔다. 판형이 제각각이라 매년 솎아내고 즉흥적으로 재배치하기를 반복하는 곳이다. 크고 넙적한 책들은 나른하게 휘어지고 표지가 없는 책들은 본문이 구겨지고 손바닥보다 작은 책들은 틈새로 달아나는 작은 밀림 같은 곳에서, CC는 지구라트처럼 서 있다. 그러니까 일단은 납득을 하게 된다. 

내 책장이 일종의 시공간 복합체인 것처럼 CC 역시 그렇다. 다시 말해 이 불균질한 기호적 체계는 시간 속에서 볼 수도 있고 공간 속에서 볼 수도 있다. 시간 속에서 CC의 역사는 모호하고 의심스럽다. 텀블벅에서 CC 프로젝트가 공개된 것은 2016년 5월이었다. 당시 판상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건축가 정현은 텀블벅 인터뷰에서 CC 프로젝트를 그가 서울을 떠나 있었던 지난 10여 년, 다시 말해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의 서울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설명했다. 이 시기는 서울이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되고 스마트폰으로 매개되어 다양한 물리적 이벤트로 출력되고 다시 네트워크로 되먹임되는 방대한 피드백 회로가 형성되던 때다. 그 일부를 인터넷으로 따라가면서 축적된 데이터와 기억을 바탕으로, CC는 백업되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깨끗이 지워지지도 않고) 끊임없이 갱신되는 현상의 모음으로서 서울의 어떤 모형 또는 기록 보관소의 디자인 제안이 되고자 했다. 이것이 어느 정도나 거대한 야망인지 나는 설명할 자신이 없다. 혹시나 무제한의 용량와 처리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있어서 모든 것을 수집하고 편집한다면 모를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획 같았다. 그러니까 『CC』가 인공지능 복제 고양이 CC와 그의 인간 오퍼레이터 TR이라는 면적 없는 두 점 사이에서 구성된 것은 거의 필연이지만, 이 책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생산되지 못한 것 또한 돌이켜 보면 거의 피할 수 없었던 일처럼 여겨진다. 

『CC』는 출간 예정일이었던 2016년 10월까지 제작되지 못했고, 원래 별책부록으로 소개되었던 『IMG』와 『BGIMG』만 11월에 미리-늦게 출간되었다. 귀여운 고양이의 서울 유람기 같은 것을 기대했던 일반 후원자에게, 반복되는 강의록과 부서진 도판으로 이루어진 파본 같은 책은 대체로 어처구니없이 보였을 것이다. “운명의 2016년”이 오면 CC가 자신의 복제된 생에서 로그아웃해 영생을 얻고 TR은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시나리오는 하나의 꿈이었다. 상자에서 시작해서 상자로 끝나는 상자 형태의 꿈. 2017년 6월에 뒤늦게 종결된 『CC』의 한 장에서 CC는 “흘러내리지 않고 몸이 꽉 끼는 상자의 편안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상자의 이미지는 하얀색 입방체 형태의 인형뽑기 기계가 끝없이 이어지는 하얀 방으로 연결되고, 무인양품과 그것을 카피한 자주 브랜드에 대한 상념으로, 다시 종이 상자로 만들어진 고양이 아파트의 사진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장에서는 CC가 서울의 모든 건물들이 “흰색 상자로 변하는 장면을, 혹은 검은색 공간으로 녹아들어가는 장면을 천천히 지켜보았”던 기억이 언급된다. 그것은 달리는 차 안에서 눈 쌓인 서울을 촬영한 흑백의 수많은 사진들로 이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CC의 죽음과 사후에 대한 TR의 이야기가 아주 오래 전 일처럼 반추된다. TR은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쓴다. “그는 전뇌 공간의 느낌이 마음에 드는 상자 안에 꽉 끼어 있는 것처럼, 마치 천국과 같이 편안하다고 했지만 실제론 중세 종교화의 천국도처럼 지옥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2017년 연말에 트위터에서 지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는 것은 인간이 만든 가상현실이라는 요지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논리적으로는 그에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해가 바뀐다는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인간은 자신의 수명을 견디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원래는 CC의 죽음도 그렇게 가상적이지만 실효성 있는 명목상의 분절로서 고안되었을 것이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타임라인에 절취선을 긋고, 일정 시간의 타임라인 전체를 스크랩해서 임의로 조각내고 이어붙여 공간적으로 재배치한 근과거의 파노라마 앞에 섰을 때, 그래서 타임라인에 집어삼켜지지 않고 그것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 바깥의 외부적 시점을 확보했을 때. 이처럼 시간 속의 세계를 전망의 대상으로 재구축하는 것은 『IMG』에서 “현대의 보는 방법” 또는 “21세기의 창문”으로, 이미지 제작자에게 주어진 “또 다른 돌파구”로, 또는 이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현실을 고쳐 그리려는 어떤 “진실된 허구의 기록”으로 제시된다. 이것이 『BGIMG』에서 해체되고 『AIR』에서 연습되고 『CC』에서 상연된다. 그러나 앞서 나는 『CC』가 완결된 것이 아니라 종결되었다고 썼다. 로그아웃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트위터의 웃기는 계정이 현실 세계의 대통령으로 치환됐을 때, 또는 트위터의 멋있는 계정이 현실 세계의 위험인물로 반전됐을 때. 현실과 가상이 만나는 흐릿한 경계에서 파도를 타던 타임라인의 위태로운 균형이 무너지면서, 기호의 세계가 총체적인 정화의 요구에 직면했을 때.  

하나의 가설을 생각해 보자. 이를테면 CC는 애초에 상자 속에서 배양된 고양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상자에 최적화된 완벽한 식빵 모양으로 자라난다. 그것은 상자 안에서 살기에 적합한 패턴을 도출하고 다시 그에 적합한 상자의 형태를 고안하면서 최적화의 나선을 그린다. 이 나선은 처음에는 아주 크게 돌고 아주 멀리 나아가지만 점점 더 작은 원을 그리고 점점 더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서 최종적으로 어느 한 점에 수렴할 것이다. 그것이 예견된 CC의 죽음이다. 그것은 일종의 특이점인데, 왜냐하면 CC로서는 그 이후를 내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시간 속에서 움직일 필요가 없는 세계가 열리는지, 아니면 시간 속에서 더 이상 움직일 여지가 없는 세계가 열리는지, 그 세계에서 자신이 어떤 형태로 존재할지, 또는 존재하기를 멈출지, CC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CC는 그 지점에 다다르는 것을 피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CC는 상자 안에 꽉 끼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CC는 전력을 다해 서둘러서 죽음의 순간을 향해 던져지는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조금 늦게, 상자 안에 든 살짝 무거운 몸체가 되어 여기저기로 배달되었다. 그중 한 세트가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빨간색, 주황색1, 주황색2, 연두색의 포스트잇 21개를 붙이고. 표지의 금박은 벌써 조금 벗겨지기 시작했다. 

원한다면 나는 이 책들에서 시간의 남은 잔향을 거두고 정념을 표백해서 흰 뼈 같은 공간적 배치만 남길 수도 있었다. 그 또한 CC를 보는 한 가지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또 하나의 가설을 생각해 보자. 아마도 CC가 죽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CC』의 등장인물 소개에서 CC는 복제 이후에만 4번 죽었다고 이야기되는데, 이것은 꽤 현실적인 숫자다. 종종 죽음과 전생이 끼어들곤 하는 시간은 연대기 순으로 나열하는 것에 크게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단순히 공간화한다고 구제되지도 않는다. 나는 가끔 뒤뜰에 앉은 미국인처럼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뒤뜰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인데) 내가 쌓아올린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책장은 내 의자를 거의 파노라마처럼 에워싸고 있다. 지하와 지상이 있고, 장벽이 있고, 임시 가설물이 있고, 움직이는 섬들이 있고,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둥들이 있다. 장벽은 세 겹으로 이루어졌고, 가장 깊은 겹에는 내가 이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아주 오래된 것들이 잠자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서울의 한국사가 있고, 가장 낮은 곳에는 2010년대 서울의 사료 또는 기념품들이 있으며, 그 사이에는 창문의 시체들이 산처럼 높이 쌓여 있다. 그것을 거슬러 오르는 경로를 찾을 때까지, CC는 맨 아래층 오른쪽 끝에 위치할 예정이다. 

(*) 2017년 12월 6일, 연세대학교 성암관 3층 갤러리 강의에서.
(**)윤원화 / 시각문화 연구자. 저서로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문서는 시간을 재/생산할 수 있는가』, 역서로 『광학적 미디어』, 『기록시스템 1800/19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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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사진: 김경태, 2018
구매처: http://superellips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