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타카노 후미코와의 만남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어린시절, 아마도 BS-1의 NHK의 다큐였는지 만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 중에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문득 나왔고 보여주었던 컷들에 완전히 매료되었었다.
"이 사람은 정말로 진지하게, 그리고 가볍게(얇게) 만화를 그리고 있다!" 이 말이 내가 한 말인지, 아니면 그 당시 패널의 대본에 쓰여있었는지는 아직도 희미한데, 타카노 후미코에 대한 가장 확실한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이후 꾸준히 여러 경로를 통해 그녀의 작업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정작 이 럭키아가씨의 새로운 일 단행본을 구매하게 된 것은 작년이었다. 나카야마씨의 사무소의 책장에서 우연히 "럭키아가씨의 새로운 일" 1쇄를 보고서 다시 예전의 모든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타카노 후미코의 작업은 이미 국내의 만화 팬들에게도 많이 소개되어있고, 소개의 링크는 그쪽으로 해두려 한다. 키리코 나나난과의 대화를 읽으면, 아마도 내가 왜 그녀의 작업들에 빠지게 되었는지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예의 대화에서도 언급되지만 본작은 타카노 후미코 본인 스스로 영화적 연출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던 시기이고, 동시에 이전까지 가져오던 연출에서 벗어나 작가 자신의 스케일의 변화를 본격적으로 활용해보려 마음먹은 작품이라고 고백한다.
타카노 모르긴. 지금 말한 유체이탈해서 방을 보는 거면 돼. 작게 하면 작게 할 수록 잘 돼.
나나난 작게 하는 거군요! 그렇구나, 지금 각성한 듯한 기분이 들어요!(웃음). 지금까지 있는 그대로의 크기로 해와서 너무 많은 것들이 보여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돌하우스를 보듯이 하면 되는 거구나.
타카노 아, 그게 아냐. 돌 하우스가 아니라 자기가 작아지는거야. 건물은 그냥 그대로의 크기면 돼. 움직이는 자기 자신이 작아져서 책상을 터벅터벅 걸어다니거나 하는 느낌.
나나난 그렇구나. 타카노씨의 느긋하고 자유로운 앵글을 떠올렸어요(웃음).
타카노 신장 15센티가 되어서 이렇게 저렇게 걸어가는거야. 요번에 인형 놀이 이야기를 그렸잖아. 요즘 느끼는 건데 내겐 이 인형 놀이의 감각이 만화를 그릴 때하고 비슷한 느낌일지도 몰라. 인형을 책상위를 걸어가게 하면서 "아무개쨩, 중얼중얼중얼"하고 말하게 하는 것처럼.
- via 청정하수구 : 여자에게 있어서 만화의 길 (3) 중.
그녀는 언제나 작품의 배경을 매우 정밀한 좌표로 설정하지만, 이 작품에서 배경은 "백화점"이라는 조금은 기이한 현대건축물이다. 많은 것들이 매우 복잡하게 녹여져 있고, 작다고 보기에는 다락방이나 부엌, 버스보다 크고, 크다고 하기에는 건물인, 그런 사이즈. 여기에 레스토랑, 옷가게, 창고 등 복잡한 프로그램들과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의 동선들을 그녀의 캐릭터들이 자유롭게 활보한다. 제한된 공간설정으로 보자면 이는 여전히 그녀 답다 할 수 있겠지만, 그 공간의 크기를 구현하는 방식들은 이전과 달리 제약을 훨씬 뛰어 넘어있다. 캐릭터들간의 심리에 따른 스케일, 주변 공간과의 관계와 시점변화는 화면을 다채롭게 보이게 하는데 일조한다.
이전의 그림들이 컷의 내부를 잘게 나누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면, 이 작업에서는 컷과 컷 사이, 장과 장 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 그림(인물)과 그림 사이를 다룬다. 후미코 특유의 단순한 선은 살아있으면서, 위의 사이 공간을 살리기 위해서인지, 그녀의 여타 단편과는 다르게 대단히 닫힌 외곽선과 넓은 면을 활용한다. 경계와 형태를 드러냄으로서, 그녀가 그려내려 했던 미묘한 관계는 좀 더 힘을 얻는다.
후미코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작업의 호불호는 크게 나뉘는 것 같은데, 그녀의메타-만화 실험은 만화팬 보다는 공간을 다루는 예술이나 건축가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