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9.5 미터, 너비 2.6 미터, 높이 1.1 미터 그리고 두께 3 밀리미터의 테이블. 사람들은 마술을 본 듯 눈을 믿지 못하고 테이블의 아래를 살펴본다.
일본 산업 디자인의 일각에서는 '일상속의 평범함'을 드러내는 수퍼노멀이 큰 붐을 이루고 있지만, 2000년대 일본의 건축에서는 하이테크놀로지를 통해 '비범함을 더욱 확장시켜버리는' 현상들이 두드러진다. 건축가 이시가미 준야는 그 일선에 있다 할 수 있다. 얇고 거대한 철판을 철저한 계산을 통해 휘어, 아무런 지지체 없이 응력만으로 유지시킨다. 본디 휘어져 버려야할 철판은 놓여진 물건들과 테이블 자체의 중력으로 말미암아, 마치 허공에 뜬 듯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사람들은 믿지 못한 듯 신기해 한다. 그의 테이블이 밀라노 가구 페어가 아니라, 2005년 기린 아트 프로젝트 전시에서 공개된 것도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사람이 이 테이블의 중앙에 올라가 춤 추는 데몬스트레이션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반응은 하나의 퍼포먼스 아트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었다.
이시가미 준야의 테이블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단순한 그림들
이토 토요를 중심으로한 phenomenalism, 그리고 그 피를 이어받은 수 많은 일본 건축가들, 그 중에서도 이시가미와 같은, 70년대에 태어난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들은 앞으로 현대 디자인이 어떻게 공학과 예술을 넘나들며 경계를 흐릴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이다. 이시가미는 그와 동시대를 사는 일본의 젊은 건축가들 특징을 - 형태적 단순성, 개념의 명료성, 그리고 그 뒤에 숨은 복잡성이라 - 명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들은 단지 각각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얽히고 섥혀 서로를 단단히 지탱하고 있다. 거대한 철강과 단순한 테이블의 개념적 형태, 그것을 위한 공학적 기술과 지식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닌, 융화되어 하나의 형태를, 아니 그것조차 넘어 이질적인 공간을 만들어 버린다.
실은 이런 상황들도 2000년께에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보기보다는 80년대 후반 일본을 아우르던 건축이론에서 시작되었다 보고있다. 특히, 하라 히로시의 '공간 - 기능에서 양상으로' 에서 소개되는 안과 밖의 균질한 표층, 투명성을 바탕으로한 시시각각 변화하는 '양상에의 건축'은 현대 일본건축계가 기대고 있는 이론의 큰 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라 히로시는 저서를 통해 현대 건축을 "기능 - 신체 - 기계" 로 이뤄졌던 근대건축에서, "양상 - 의식 - 하이테크널러지(전자장비)" 의 현대건축으로 변화하게 될 것 임을 이미 주목하고 있었다.
일본의 70년대생들이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런 이론이 현실로 꽃 피우게된 것은, 무엇보다 획기적인 기술발전 때문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젊은 건축가들은 '기능을 따르는 형태'가 아닌, '명쾌한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형태'를 우선시한다. 그리고 그 형태를 구현하는 '높은 기술'을 떠올린다.
형태와 개념의 단순함은 더더욱 복잡한 시스템구조를 통해 구체화되고, 만들어진다. 여기에 프로세스를 모두 드러내버리는 투명성으로 말미암아, 사물과 물질은 제 값을 잃고, 전혀 다른 정보들로 치환되어 또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된다 . 이시가미는 바로 이를 통해 위계를 허물어 버리는 건축을, 또 다른 자연을 만들어내는 미래의 건축을 자신하는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