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로잔 성당의 표면, 숫자를 찍은 건축 사진가 김경태의 사진집, 1505 - 2022 Cathédrale de Lausanne.
로잔성당이 지어진 해는 1170년, 이름을 알 수 없는 벽돌공의 작업에서 출발하였다. 1215년까지 또 다른 무명의 벽돌공이 마무리를 짓고, 이후 Jean Cotereel에 이르러서야 포치와 2개의 탑을 비롯한 대부분이 완성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그의 이름이 성당의 건축가로 등록되어있다.) Villard de Honnecourt 의 실내 유리장식, 그리고 종교개혁은 성당의 장식과 형태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1505년이 되어서야 로잔 성당은 우리가 알아 볼 형태를 띄게 된다. 1536년 이래로 대대적인 보수/개조 (reform)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공사는 19세기 말엽 Viollet-le-Duc (*) 가 지휘한 것으로, 고전 양식에 눈에 띄는 확장이 이루어졌다. 가장 최근의 공사는 1968년 북부타워 부분이다. 서북쪽의 탑과 앱시스까지 마무리 짓는다면, 2022 년에 최종 보수가 마무리 될 것으로 예상한다.제목의 (1505-2022) 숫자는 예의 역사적 사실과는 맥락없이 짝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505년이 어떤 시작의 날짜가 될 이유도 없고 (그것은 오히려 초기 형태의 완성 날짜였다), 2022년은 단지 보수 공사의 예정날짜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맥락없는 시점의 포착이야 말로 이 시간을 초월한 성당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지 모른다. 역사란 누군가 임의로 나누어 본 큰 사진 이미지와도 같아서, 실제로는 잘려나간 프레임 바깥에 끝 없는 연속상황이 존재한다. 다만 어딘가를 지정했기 때문에 우리는 앞뒤로 펼쳐진 더 큰 세계 전체를 -시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상상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진가는 눈에 띄는 건축적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담고 있지 않다. 로잔 성당에는 무명씨의 벽돌쌓기에서 로마네스크, 고딕양식 까지 각종 양식의 베리에이션이 건축을 따라 펼쳐져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4개의 숫자들, 혹은 문자나 장인이 남겨놓은 흔적들 뿐이다. 성당 개조/보수 공사가 진행될 때 마다, 벽돌과 건물의 일부에는 숫자와 년도가 새겨진다. 사진가는 F.S 1886 R 1877 과 같이 알파벳과 숫자로 이뤄진 것에서 부터 빗금기호, 1957, 1960 과 같은 그냥 숫자들, 개조와 보수를 거치며 삽입된 새로운 벽돌, 헌 벽돌, 마모된 표면을 주목했고, 포착해 내었다. 운이 좋다면, 그것들을 중심으로 펼쳐져있는 질료의 조합, 양식의 비균질성들을 발견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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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본 이미지들이 먼저 실렸던 "2015 타이포 잔치 프리비엔날레 뉴스레터"의 디자이너 신동혁, 신해옥 듀오가 맡았다. A4 사이즈 52페이지의 책은 중철제본되어 두꺼운 표지로 마무리 되어있다. 그들은 건축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axonometric view(**) 에서 책을 디자인 하려 한 것 같다. 표지는 성당 벽면의 암영부이고, 표지의 날개는 앞쪽 하나만 있는데, 이것을 펼치면 본래 벽의 반대면인, 명부가 나타난다. 그 바로 뒤를 잇는 첫장은 목차나 제목이 아닌, 표지이미지 암부의 연장선이 놓인다. (fig.1) 이런 의도는 현실이 아닌, 개념적인 건축 시점에서 더 확연히 드러나는 효과이다. 책 뒷면엔 유일한 텍스트(***)가 있다. 본문 내지에는 어떠한 설명도 없으며, 단지 크고 작은 사진들이 교차로 나타날 뿐이다. 사진 이미지의 배열은 줌인 Zoom in 된 사진이 화면 전체를 채우고, 줌 아웃 Zoom out 된 사진이 작게 놓이는 무척이나 단순한 구조이다.
개념적으로는 다이어그램처럼 간결하지만, 제작에 이르러 이런 요소들은 어딘가 다르고 모자란 것들이 접붙여진다. 책 등 글씨 일부가 살짝 드러난 표지(fig.2), 날개의 비대칭성, 작게 들어간 사진들의 개별 크기가 그렇다. 이 작은 줌 아웃 사진들은 어느 것 하나 똑같은 크기로 재단되어 있지도 않다. 그 비례와 위치도 임의 (거의 사진가가 마구잡이로 잘라낸 듯한) 이다. 책의 각 장들은 코팅된 얇은 종이와 무광의 두꺼운 종이가 교차되어 쌓여있고, 이따금씩 단면 인쇄된 페이지가 양면 페이지 사이에 끼어있는 탓에 균일한 속도로 감상하기 어렵다. 어린시절 초등학생들이 두 손바닥을 겹쳐 시신을 만지는 촉감을 느껴보려는 듯한 차가운 기괴함, 그런 유머가 서려있다.
아마도 그들이 제작비 절감을 위해 선택했었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중철제본도, 애초에 책의 옆면이 거칠어질 것을 미리 알고서, 도리어 그 차이를 과도하게 드러내기위한 당연한 선택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거의 디자인되어 있지 않은 듯한, 종이를 한번 접는 정도의 단순한 개념의 틀 안에서, 차이가 나는 모든 것들은 서서히 아귀가 맞아 들어간다.
fig.1
(*) Eugène Viollet-le-Duc (1814-1879)는 당대 저명한 건축가로 중세 건축 재건에 힘을 쏟았다. 그는 고딕 리바이벌에 큰 감화를 받았다. 고딕의 표현양식보다는, 그것을 이룩하기위한 구조에 더 신경을 썼으며, 그런 그의 이상은 때때로 시간을 초월하는 감각마저 보여준다. 그는 에펠을 도와 자유의 여신상의 내측 구조를 디자인하기도 하였다.(**)axonometric view 는 투시가 제거된, 직교 투영법이다. 현실감과 오히려 거리를 두는 이런 투시법은, 좌표축을 기준으로 한 각 면이 일시적으로 고정된 상태이며, 그렇기 때문에 제작자는 상하좌우로 패닝해도 왜곡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 좌표의 장점은 재현이 아닌 구축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제작자는 이 유사 3차원 이미지를 독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고 원작자의 개념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된다. 현실의 모방과는 애초에 거리를 두었으므로 질료와 내부 콘텐츠는 지속적으로 치환이 가능하다.
(***) 짧은 텍스트는 성당에 대한 위키피디아식 설명도 없으며, 형성과 변화, 보존과 구축을 상징하는 건물과, 아이러닉한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는 숫자, 그것에 관심있는 사진가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