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H의 교수 Peter Märkli 의 10년간의 교육기록.
2012년 5월 11일 토요쵸역(東陽町駅) 갤러리 A4 에서는 Peter Märkli (페토르 멜클리)교수의 Eidgenössische Technische Hochschule Zürich (ETH) 스튜디오 작업을 모은 '세계 건축 학교 전 ETH 스위스 공과 대학 건축 교육 -Peter Markli 스튜디오에서' 전시를 개최하였다. 이에 맞춰 출판 된 본 카탈로그는 02 년부터 12 년까지의 멜클리 스튜디오 10년간의 활동과 그의 작품 7개, 그리고 멜클리의 인터뷰를 수록하고있다.
세계 건축 흐름은 21세기 10년을 지나자 빠르게 아시아(시장)에서 다시 서구-유럽(기율)으로 흘러가고 있다. 일본은 이 변화를 어느누구보다도 빨리 실감했고, 받아들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11년의 토호쿠 지진 이후 일본 건축계의 다소 의기소침한 행보와도 관계가 있다.) 서구 건축에서도 기본을 중시하는 -그러면서 조금씩 뒤트는- 스위스 건축가들이 다시 주목 받던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기율과 결과물이 혁혁한) 일본건축가들을 일본인들 보다 훨씬 더 깊이 연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Valerio Olgiati가 언급한 시노하라 카즈오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보자.) 이런 현상은 일본인에게 신선한 충격이면서도, 대체 어떤 이유가 뒤에 있을 지 궁금했을 것이다. 토호쿠 지진이 발발한 지 1년 후에 기획되고 열린 본 전시는, 스위스 건축 기반인 건축 "교육"을 향해있고, ETH의 교수진들중에서도 페토르 멜클리의 스튜디오 작업들을 주목한다.
책은 그의 두 제자 Chantal Imoberdorf와 아틀리에 완 (Bow-Wow)의 카이지마 모모요의 서문으로 시작한다. (카이지마는 96-97년 ETH에 교환학생신분으로 멜클리의 스튜디오를 경험한 바 있다.) 멜클리는 다소 나이브해 보일정도로 건축에 있어서의 정신과 생동감, 표정-표현과 같은 에너지를 강조하지만, 그 결과는 엄격한 건축"물"로 향하고 있다. 두 서문은 학생으로서 바라본 스승 멜클리의 성품외에도, 취리히라는 도시가 지닌 집합주택군의 특징과 로마네스크양식등 서구 건축 본연의 깊은 역사를 기반으로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 교육과정에 깊이 감화되었음을 회고한다.
스튜디오는 취리히, 세인트 갈렌, Vendig의 대운하를 거치며 고층 건물, 스포츠센터, 레스토랑의 건물을 다루다가도 곧이어 서구 고전건축의 아이디어(idee)와 게슈탈트(gestalt) 론으로 이어진다. 또 티레니아 해역의 외딴섬 Giannutry 섬 속의 작은 주택, 팔라디오의 주택들, 도회지역 건축형상 축조술의 탐구, 베네치아의 익스텐션, 페사로의 빌라 임페리얼의 입구건물등 리서치와 답사를 통한 것, 또 도시 조닝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 게슈탈트와 표현, 도시와 주택등 도시에 대한 맥락을 건든다.
과제 결과는 건물 실존을 짐작케하는 건축도면과 모델이미지, 지도 레벨에서의 피규어드로잉(figure drawing)들로 구성되었다. (다이어그램이나 학생 자기 주장이 드러난 글은 없다.) 뒤이어 곧바로 멜클리의 인터뷰가 나오고 그의 근작인 노바티스 캠퍼스, 컨벤션 센터, 주거 경쟁부문 출품작, 집합주택, 와이너리, Synthes 의 새 오피스가 학생작품들과 동일한 형식으로 배열되며 마무리된다.
스위스 건축교육은 보수적이라는 표현이 꽤 적절하다. 그러나 치밀한 구성과 제약조건하에서 완성된 학생작들은 디시플린, 그 자체로 무척 인상적이다. 멜클리 스튜디오 과제들에서 기존 건축 군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스위스 건축 교육의 중심철학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멜클리 스튜디오의 특징은 도시적, 건축적 맥락과 딱딱한 제약 속에서 학생들 개인의 원초적인 공간의 이미지, 그 상상-형상이 힘을 잃지 않는 데에 있다. 이는 학생작뿐 아니라 멜클리 본인의 근작 섹션에서도 확인가능하다. 멜클리 자신 또한 내면에 깊이 각인된 건축 혼을 꺼뜨리지 않고, 새로움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제간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과 영향은 책 곳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고전건축과 무명씨 건축에의 탐구, 재료에 대한 깊은 관심과 그 표현방식(텍토닉)은 멜클리의 전매특허이며 그의 드로잉에서 부터 여지없이 드러난다. - 마치어린아이 같은 스케치와 가소성(plasticity)이 느껴지는 -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컴퓨터 보다는 손으로 그린, 건축 재현에 있어서 드로잉은 드로잉. 그 자체로서 물질성을 앞세운 작업방식을 고수한다. 평면계획상에서도 - 언뜻 불완전에 가까운 - 틀에 맞춰지지 않는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이는 탄탄한 건물로 (재)구축된다. 멜클리의 근작은 포맷 그대로 학생작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학생작들을 무명씨의 건축을 바라보듯 하는 건 아닐까?) 단순 형태 안에서 끝없이 컨벤션을 부수는 복잡한 디테일들은 이대로 안주하지 않는 스승의 태도를 보여준다.
책은 독일어-일본어의 2개 국어로 되어있다. 그래서 국제적인 자료로서 보다는 일본 내수용 (스위스 건축교육) 연구서처럼 느껴진다. 디자인이나 판형은 ETH 의 Year book 형식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다만 분홍빛 색상이 내부 이미지와 페이지 공간을 분리시키거나 (스튜디오 작업섹션)또는 흰페이지에 분홍배경의 이미지로 합치하는 (멜클리 본인의 작업) 역할을 하는 것은 특이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