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February 28, 2014

Robert Venturi : 이미지와 죽음

1925년 생 Robert Venturi는 1931년 생 그의 부인 Denise Scott Brown과 함께 아직 잘 살고있다. 


20세기 건축계 이론을 확립한 가장 주요한 저술가 하나를 뽑으라면 Le Corbusier 를 꼽는데 이견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나, 20세기 후반에 방점을 둔다면 오히려 Robert Venturi와 그의 저서들이 먼저 떠오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전자는 구축술에 기반한 혁명 선언문과 이를 뒷받침 하는 풍부한 결과물들을 남겼다면, 후자는 맥락에 기반한 모호한 글과 방대한 이미지 레퍼런스, 작은 집 몇 채를 비롯한 몇 안되는 건물들이 주요 작품으로 회자된다.

죽기 직전까지 거대한 도시프로젝트를 계획하고 현실화 되는 것을 기다리던 Corbusier에 비교해,  Venturi의 전성기란 저술가로서 활발했던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후반 정도까지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유럽의 Aldo Rossi가 Pritzker 수상을 받은 바로 이듬해(1991년)에 같은 상을 수상한 뒤로 활동은 더더욱 뜸해져서, Yale 이나 GSD에 Visiting Lecture 를 하는 경우들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 아니 좋게 표현하자면 살아있는 고전과도 같은, 관심밖 존재가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Venturi의 대표저술로 그의 아내인 Denise Scott Brown과 Steven Izenour 와 같이 72년도 공동저작했던 "라스베가스에서의 교훈."(Learning from Las Vegas  (MIT Press, Cambridge MA, 1972, revised 1977.)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는 그의 이론과 건축관을 지나치게 맥락과 상징, 기호에 관한 것으로 오해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라스베가스에서의 교훈" 은 Venturi 일인이 아닌 조력자들과의 깊은 협업으로 탄생한 결과물이었으며 특히, 그의 아내인 Denise Scott Brown의 시점에 상당수 기대고 있었다. (**)

당대를 훌쩍 뛰어넘은 Venturi 일인의 건축적 시선은 오히려 6년 앞서 출판된 그의 첫 번째 저술,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The Museum of Modern Art Press, New York 1966.) 에서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이 77년 재출간된 서문에서 "이제 되돌아보니 책의 제목을 "건축적 형태의 복합성과 대립성"(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Form) 으로 하고 싶어지고야 말았다."고 언급했듯,  책은 당대 상황 - 60년대 건축학계의 상황은 무엇보다도 형태가 최우선 과제였다. - 에 맞추어 쓰여졌다. 전통과 현대를 모두 아우르며 건축물의 형태와 구축양식에 대한 관찰자 시점, 태도를 엿 볼 수 있는 것이 흥미롭다. (72년 저술이 상징과 맥락에 촛점을 맞추어 단일 건축물보다는 건물과의 관계를 우선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는 무척 재미있는 변화이다.)

언뜻 모던의 간결함이나 기능주의를 전통주의자 관점에서 비판할 것만 같은 겉보기와는 달리, 둘 모두를 동등한 위치에서 담담히, 지극히 개인적 취향에 기반해 분석하고 있다. 건축이 드러내는 최상단의 표면의 구조- 형태를 통해 간결함과 대비되는 복잡성, 제어가능한 형태들의 집합과 무분별한 컨텐츠를 담을 수 있는 프레임에 대해 동시에 고민한다. 둘 사이에 어떤 위계나 호불호를 가리기 보다는 건축가와 건축을 분리하고, 새로운 관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권말에는 66년까지 그가 작업했던 건축들 (이론의 사례로서)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350개의 아름다운 흑백 건축 이미지 도판들이다.  주요 건축 이론 서적으로 불리우는 그 어떤 서적들 보다도 다양하고 많은, "아름다운 사진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따금 느슨하다고 비판받기도 하는 그의 텍스트를 훌륭히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풍부한 이미지 사용은 모두 출판사인 Museum of Modern Art 의 이미지 아카이브측에서 사용권한을 허가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그가 꺼내든 많은 레퍼런스의 양에 압도되는 감각도 어느 정도 역치점을 넘어서는 시기가 되고나니, Venturi 본인의 Alvar Aalto 라는 건축가에 대한 사랑을 Corbusier 라는 메인스트림 캐릭터에 대치시켜보고 싶었던 단순한 이유가 동기는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 저 둘을 설명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텍스트의 역할이란 사실상 교차 배열된 이미지들의 주석에 불과하다 느껴질 정도이다.

66년 처음 나온 책의 표지(****)가 내용과 달리 현대주의적 형식을 띄고 그 판형이 많은 수의 이미지를 다루는데 쉬워 보이지 않았다면,  77년 재출간된 이 책은 판형도 폰트도 이미지를 더욱 드러내는데 촛점을 맞춘 듯 보인다.  표지도 이미지의 배열과 텍스트의 관계도 사뭇 다르게 재편집되었다.

누구나 한번쯤 듣는 후기-현대의 고전이고, 심지어 저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다들 관심도 없는 시기임에도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따지고 보면 Venturi의 책을 사는 행위란,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검색엔진서 쉬이 구하기 힘든, 저작권 걸린 고급 건축이미지들을 단돈 2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가격으로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니 생각하면 할수록 이 책의 존재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건축레퍼런스를 뒤진다며 텀블러나 핀터레스트에서 매일을 허비하는 "건축 원숭이떼" 들이 마치, 저 '순환 타임라인으로 엮인 고전과 현대주의를  화자의 고정시점으로 정리-도해 해놓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등잔밑에 놔두고 쓰레기 바다에서 허우적대고만 있는 꼴이나 다름없어 뵌다.

(*) 어쩌면 스스로 사형선고를 내린 뒤 살아있는 레퍼런스화 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 Denise Scott Brown은 이후 Pritzker 측에 자신의 이름을 동재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으나 기각되었다.

(***) Venturi 가 쓴 에세이 중 하나에서 그는 고백한다.
"Alvar Aalto 의 작업은 나에겐 현대를 마스터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그의 작업은 예술과 기술적 측면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현대적이며, 풍부한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그의 모든 작업은 당대를 넘어 살아숨쉬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방법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그런 다층적 차원과 계층을 지닌 작업의 개별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찌되었건 그 순간의 진실같은 것이다." Venturi 라는 인물의 특성상, 슬며시 농담 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이 에세이를 마무리 짓느라 힘겨울 즈음 알토가 나에게 있어 가장 사랑스러운 점은, 그가 건축에 대한 글을 써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 Pritzker 수상의 소개문 번역.

(****) 66년 초판의 표지는 아래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