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PBT : 테스트

디지털 환경과 도구에 대한 초타원형 출판의 첫번째 책 PBT.

PBT
(포토샵 브러시 텍스트)
출판일 2014년 12월 28일
초타원형 출판 엮음
글 정 현
사진 <목록 모형(들), 2014> 김경태
에세이 「회신」 김건호
디자인 김동휘
다이어그램 디자인 판상형
편집 손영민
판형 128 * 188
값 25,000원
페이지 수 244쪽
분야 예술
발행처 초타원형 출판
홈페이지 http://superellipse.net
전자우편 superellipse.books@gmail.com
Copyright Ⓒ초타원형, 2014. Printed in Seoul, Korea.
ISBN 979-11-953312-1-5 03650

“『포토샵 브러시 텍스트』는 2013년부터 1년간 인터넷에서 공유된 포토샵용 디지털 브러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포토샵이란 수백 명의 수학자와 그래픽 디자이너, 개발자가 함께 모여 만들어 낸, 지난 세기말 처음 선보인 이래로 창작자들에게 가장 널리 쓰이는 디지털 이미지 편집도구입니다. 이 책은 포토샵 프로그램 내부의 많은 도구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인, 브러시 도구에 대해서만 다룹니다. (…) 이 책을 구입해 볼 정도의 독자라면 디지털 저작도구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숙지한 상태일 것입니다. 혹은 그와는 정반대 편에서, 책을 읽고 나서도 도구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분들도 계시겠지요. 다소 혼잡한 구성이라 해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분과, 그렇지 못한 분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께 이 책은 너무 일반적이고 쉽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설명은 과감히 건너뛰기도 하며, 낯선 단어가 난무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생소한 표현과 불친절해 보이는 태도가 책의 이해를 방해하는 장애물이기보다는 볼 때마다 흥미를 자아내는 낯선 풍경처럼 보이기를 바랍니다.”
— 서문 중에서.

PBT는 포토샵 브러시 텍스트의 약자이다. 이 책은 지난 세기 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어 온 이미지 편집도구인 포토샵의 도구들 중 널리 알려지지 않은 “브러시 도구”를 다룬다. 『PBT』 출간 전 1년간 인터넷을 통해 배포한 디지털 브러시는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건축가, 사진가 등 전문가들의 저작도구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디지털 도구 제작 방법과 출력 매체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깊이 다루려 했고, 소셜 펀딩 서비스 텀블벅을 통해 208명에게 후원받아 『PBT』를 제작했다.

디지털 브러시는 단순히 아날로그 도구 효과를 재현한다는 목적을 넘어 디지털 환경 내부의 인터페이스 역할과 출력 메커니즘을 동시에 담당한다. 저자는 브러시를 비롯해 픽셀, 레이어, 출력 등 디지털 도구들의 기본 원리, 아날로그 저작도구와 디지털 도구의 차이점 등을 개인적인 경험과 감각의 예를 들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현대미술 전시장의 조각이나 회화 작품을 건축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방법, 벡터와 비트맵을 넘나드는 다양한 이미지는 디지털 세계의 여러 개념과 의미 들을 축조해 나간다.

브러시 패턴이 화면에서 스트로크와 면, 최종 출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마치 자연과 그에 대응하는 건축물의 설계와도 같으며, 이를 기존 기법서 형식으로 보여 주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발행인은, 비슷한 시점으로 작성된 건축가의 글, 사진가의 사진 들을 “잇고 쌓아서 만들려” 했다. 이러한 의도는 책의 형태뿐만 아니라 책의 배경에 놓일 사은품(후원자들을 위해 별도로 제작된 두 권의 소책자, 포스터, 토트백 등) 구성 방식에까지 반영되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김동휘의 본문 디자인과 책의 만듦새도 주목할 만하다. 텍스트는 책 앞날개에 적힌 목차를 시작으로 날개 안쪽 페이지부터 과감하게 배치되어 마치 질주를 시작하는 듯하다. 본문에서 건축가 정현, 건축가 김건호 등으로 글의 화자가 변할 때마다 글자 크기와 기울기 등 표정을 달리하고, 사이사이 판상형이 벡터로 그린 다이어그램들이 삽입되어 있다. 본문 일부 단어들은 이 빠진 벽돌처럼 은별색으로 처리되어 특정 각도에서 회색으로 보이거나 잘 읽히지 않는데, 이는 이른바 용어 정리 페이지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하이퍼링크다. 하지만 정작 용어 정리 장에 이르러서는 본문과 페이지 번호마저 모두 은색으로 표기되어 책이라는 물질이 가진 고유의 한계와 특성(시선의 좌표축을 바꿀 때마다 드러나는 물질의 현상학적 효과)을 더욱 강조한다.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는, 혹은 모두 반사해 버리는 텍스트 페이지의 뒤를 곧바로 잇는 것은 언뜻 느닷없이 보이는 건축 사진가 김경태의 사진들―알루미늄 호일로 상자를 감싼 작업으로 시작하는 이미지들―이다. 디지털 작품을 출력하여 다시 디지털로 포섭한 열다섯 점의 사진 이후에야 디지털 브러시를 설명하는 본문의 테스트 도판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서로 다른 해상도와 확대 축소 이미지로 패치워크된 이미지 페이지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으며, 이미지들은 본문과 정확히 같은 페이지 수만큼 이어진다. 244페이지의 디지털 세계 여행은 익명, 무명, 온라인 아이덴티티를 기리는 이름들을 책의 뒷날개에 새기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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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타원형 출판에 대해

2012년 설립된 초타원형 출판은 크고 작은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독립출판사이다. 2014년 출간한 『PBT』를 시작으로, 특정 지역 건물을 다룬 『HLVT』, 뒤섞인 가짜(진짜?) 맥락 속 건물 이야기 『CC』, 당대 건축 이미지 재현 신방법론을 다룰 『ISBN』을 3년에 걸쳐 내놓을 예정이다.

PBT
(photoshop Brush Text)
Published on Dec. 28, 2014
Text Hyun Chung
Photo “M/F(models)” Kyoungtae Kim
Essay “reply” Gunho Kim
Editor Youngmin Son
Image Planstadt
Design Donghui Kim
Diagram Design Planstadt
Publisher Hyun Chung
Published by Superellipse
Registration No. 2012-000267 Aug. 3, 2012
E-mail superellipse.books@gmail.com
Homepage http://superellipse.net

All materials in this book, including text, graphics, and images, are copyrighted by Superellipse.
All rights reserved. Reproduction and retransmission is prohibited without prior written permission.

Copytight Ⓒ초타원형, 2014. Printed in Seoul, Korea.
ISBN 979-11-953312-1-5 03650
Price KRW 25,000

(*) 포스팅사진: 김경태, 2014
(**) 포스팅이미지: 정현, 2014

Saturday, November 1, 2014

1505–2022 : Cathédrale de Lausanne

스위스 로잔 성당의 표면, 숫자를 찍은 건축 사진가 김경태의 사진집, 1505 - 2022 Cathédrale de Lausanne.
로잔성당이 지어진 해는 1170년, 이름을 알 수 없는 벽돌공의 작업에서 출발하였다. 1215년까지 또 다른 무명의 벽돌공이 마무리를 짓고, 이후 Jean Cotereel에 이르러서야 포치와 2개의 탑을 비롯한 대부분이 완성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그의 이름이 성당의 건축가로 등록되어있다.) Villard de Honnecourt 의 실내 유리장식, 그리고 종교개혁은 성당의 장식과 형태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1505년이 되어서야 로잔 성당은 우리가 알아 볼 형태를 띄게 된다. 1536년 이래로 대대적인 보수/개조 (reform)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공사는 19세기 말엽 Viollet-le-Duc (*) 가 지휘한 것으로, 고전 양식에 눈에 띄는 확장이 이루어졌다. 가장 최근의 공사는 1968년 북부타워 부분이다. 서북쪽의 탑과 앱시스까지 마무리 짓는다면, 2022 년에 최종 보수가 마무리 될 것으로 예상한다.

제목의 (1505-2022) 숫자는 예의 역사적 사실과는 맥락없이 짝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505년이 어떤 시작의 날짜가 될 이유도 없고 (그것은 오히려 초기 형태의 완성 날짜였다), 2022년은 단지 보수 공사의 예정날짜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맥락없는 시점의 포착이야 말로 이 시간을 초월한 성당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지 모른다. 역사란 누군가 임의로 나누어 본 큰 사진 이미지와도 같아서, 실제로는 잘려나간 프레임 바깥에 끝 없는 연속상황이 존재한다. 다만 어딘가를 지정했기 때문에 우리는 앞뒤로 펼쳐진 더 큰 세계 전체를 -시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상상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진가는 눈에 띄는 건축적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담고 있지 않다. 로잔 성당에는 무명씨의 벽돌쌓기에서 로마네스크, 고딕양식 까지 각종 양식의 베리에이션이 건축을 따라 펼쳐져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4개의 숫자들, 혹은 문자나 장인이 남겨놓은 흔적들 뿐이다. 성당 개조/보수 공사가 진행될 때 마다, 벽돌과 건물의 일부에는 숫자와 년도가 새겨진다.  사진가는 F.S 1886  R 1877 과 같이 알파벳과 숫자로 이뤄진 것에서 부터 빗금기호, 1957, 1960 과 같은 그냥 숫자들, 개조와 보수를 거치며 삽입된 새로운 벽돌, 헌 벽돌, 마모된 표면을 주목했고, 포착해 내었다. 운이 좋다면, 그것들을 중심으로 펼쳐져있는 질료의 조합, 양식의 비균질성들을 발견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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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본 이미지들이 먼저 실렸던 "2015 타이포 잔치 프리비엔날레 뉴스레터"의 디자이너 신동혁, 신해옥 듀오가 맡았다.  A4 사이즈 52페이지의 책은 중철제본되어 두꺼운 표지로 마무리 되어있다. 그들은 건축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axonometric view(**) 에서 책을 디자인 하려 한 것 같다. 표지는 성당 벽면의 암영부이고, 표지의 날개는 앞쪽 하나만 있는데, 이것을 펼치면 본래 벽의 반대면인, 명부가 나타난다. 그 바로 뒤를 잇는 첫장은 목차나 제목이 아닌, 표지이미지 암부의 연장선이 놓인다. (fig.1) 이런 의도는 현실이 아닌, 개념적인 건축 시점에서 더 확연히 드러나는 효과이다. 책 뒷면엔 유일한 텍스트(***)가 있다. 본문 내지에는 어떠한 설명도 없으며, 단지 크고 작은 사진들이 교차로 나타날 뿐이다. 사진 이미지의 배열은 줌인 Zoom in 된 사진이 화면 전체를 채우고, 줌 아웃 Zoom out 된 사진이 작게 놓이는 무척이나 단순한 구조이다.

개념적으로는 다이어그램처럼 간결하지만, 제작에 이르러 이런 요소들은 어딘가 다르고 모자란 것들이 접붙여진다. 책 등 글씨 일부가 살짝 드러난 표지(fig.2), 날개의 비대칭성, 작게 들어간 사진들의 개별 크기가 그렇다. 이 작은 줌 아웃 사진들은 어느 것 하나 똑같은 크기로 재단되어 있지도 않다. 그 비례와 위치도 임의 (거의 사진가가 마구잡이로 잘라낸 듯한) 이다. 책의 각 장들은 코팅된 얇은 종이와 무광의 두꺼운 종이가 교차되어 쌓여있고, 이따금씩 단면 인쇄된 페이지가 양면 페이지 사이에 끼어있는 탓에 균일한 속도로 감상하기 어렵다. 어린시절 초등학생들이 두 손바닥을 겹쳐 시신을 만지는 촉감을 느껴보려는 듯한 차가운 기괴함, 그런 유머가 서려있다.

아마도 그들이 제작비 절감을 위해 선택했었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중철제본도, 애초에 책의 옆면이 거칠어질 것을 미리 알고서, 도리어 그 차이를 과도하게 드러내기위한 당연한 선택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거의 디자인되어 있지 않은 듯한, 종이를 한번 접는 정도의 단순한 개념의 틀 안에서, 차이가 나는 모든 것들은 서서히 아귀가 맞아 들어간다.

fig.1


fig.2
(*) Eugène Viollet-le-Duc (1814-1879)는 당대 저명한 건축가로 중세 건축 재건에 힘을 쏟았다. 그는 고딕 리바이벌에 큰 감화를 받았다. 고딕의 표현양식보다는, 그것을 이룩하기위한 구조에 더 신경을 썼으며, 그런 그의 이상은 때때로 시간을 초월하는 감각마저 보여준다. 그는 에펠을 도와 자유의 여신상의 내측 구조를 디자인하기도 하였다.

(**)axonometric view 는 투시가 제거된,  직교 투영법이다. 현실감과 오히려 거리를 두는 이런 투시법은, 좌표축을 기준으로 한 각 면이 일시적으로 고정된 상태이며, 그렇기 때문에 제작자는 상하좌우로 패닝해도 왜곡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 좌표의 장점은 재현이 아닌 구축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제작자는 이 유사 3차원 이미지를 독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고 원작자의 개념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된다. 현실의 모방과는 애초에 거리를 두었으므로 질료와 내부 콘텐츠는 지속적으로 치환이 가능하다.

(***) 짧은 텍스트는 성당에 대한 위키피디아식 설명도 없으며, 형성과 변화, 보존과 구축을 상징하는 건물과, 아이러닉한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는 숫자, 그것에 관심있는 사진가를 소개한다.

Thursday, September 11, 2014

Märkli : 기율

ETH의 교수 Peter Märkli 의 10년간의 교육기록.

2012년 5월 11일 토요쵸역(東陽町駅) 갤러리 A4 에서는 Peter Märkli (페토르 멜클리)교수의 Eidgenössische Technische Hochschule Zürich (ETH) 스튜디오 작업을 모은  '세계 건축 학교 전 ETH 스위스 공과 대학 건축 교육 -Peter Markli 스튜디오에서' 전시를 개최하였다. 이에 맞춰 출판 된 본 카탈로그는 02 년부터 12 년까지의 멜클리 스튜디오 10년간의 활동과 그의 작품 7개, 그리고 멜클리의 인터뷰를 수록하고있다.

세계 건축 흐름은 21세기 10년을 지나자 빠르게 아시아(시장)에서 다시 서구-유럽(기율)으로 흘러가고 있다. 일본은 이 변화를 어느누구보다도 빨리 실감했고, 받아들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11년의 토호쿠 지진 이후 일본 건축계의 다소 의기소침한 행보와도 관계가 있다.) 서구 건축에서도 기본을 중시하는 -그러면서 조금씩 뒤트는- 스위스 건축가들이 다시 주목 받던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기율과 결과물이 혁혁한) 일본건축가들을 일본인들 보다 훨씬 더 깊이 연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Valerio Olgiati가 언급한 시노하라 카즈오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보자.) 이런 현상은 일본인에게 신선한 충격이면서도, 대체 어떤 이유가 뒤에 있을 지 궁금했을 것이다.  토호쿠 지진이 발발한 지 1년 후에 기획되고 열린 본 전시는, 스위스 건축 기반인 건축 "교육"을 향해있고, ETH의 교수진들중에서도 페토르 멜클리의 스튜디오 작업들을 주목한다.

책은 그의 두 제자 Chantal Imoberdorf와 아틀리에 완 (Bow-Wow)의 카이지마 모모요의 서문으로 시작한다. (카이지마는 96-97년 ETH에 교환학생신분으로 멜클리의 스튜디오를 경험한 바 있다.) 멜클리는 다소 나이브해 보일정도로 건축에 있어서의 정신과 생동감, 표정-표현과 같은 에너지를 강조하지만, 그 결과는 엄격한 건축"물"로 향하고 있다. 두 서문은 학생으로서 바라본 스승 멜클리의 성품외에도, 취리히라는 도시가 지닌 집합주택군의 특징과 로마네스크양식등 서구 건축 본연의 깊은 역사를 기반으로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 교육과정에 깊이 감화되었음을 회고한다.

스튜디오는 취리히, 세인트 갈렌, Vendig의 대운하를 거치며 고층 건물, 스포츠센터, 레스토랑의 건물을 다루다가도 곧이어 서구 고전건축의 아이디어(idee)와 게슈탈트(gestalt) 론으로 이어진다. 또 티레니아 해역의 외딴섬 Giannutry 섬 속의 작은 주택, 팔라디오의 주택들, 도회지역 건축형상 축조술의 탐구, 베네치아의 익스텐션, 페사로의 빌라 임페리얼의 입구건물등 리서치와 답사를 통한 것, 또 도시 조닝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  게슈탈트와 표현, 도시와 주택등 도시에 대한 맥락을 건든다.

과제 결과는 건물 실존을 짐작케하는 건축도면과 모델이미지, 지도 레벨에서의 피규어드로잉(figure drawing)들로 구성되었다. (다이어그램이나 학생 자기 주장이 드러난 글은 없다.) 뒤이어 곧바로 멜클리의 인터뷰가 나오고 그의 근작인 노바티스 캠퍼스, 컨벤션 센터, 주거 경쟁부문 출품작, 집합주택, 와이너리, Synthes 의 새 오피스가 학생작품들과 동일한 형식으로 배열되며 마무리된다.

스위스 건축교육은 보수적이라는 표현이 꽤 적절하다. 그러나 치밀한 구성과 제약조건하에서 완성된 학생작들은 디시플린, 그 자체로 무척 인상적이다. 멜클리 스튜디오 과제들에서 기존 건축 군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스위스 건축 교육의 중심철학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멜클리 스튜디오의 특징은 도시적, 건축적 맥락과 딱딱한 제약 속에서 학생들 개인의 원초적인 공간의 이미지, 그 상상-형상이 힘을 잃지 않는 데에 있다. 이는 학생작뿐 아니라 멜클리 본인의 근작 섹션에서도 확인가능하다. 멜클리 자신 또한 내면에 깊이 각인된 건축 혼을 꺼뜨리지 않고, 새로움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제간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과 영향은 책 곳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고전건축과 무명씨 건축에의 탐구, 재료에 대한 깊은 관심과 그 표현방식(텍토닉)은 멜클리의 전매특허이며 그의 드로잉에서 부터 여지없이 드러난다. - 마치어린아이 같은 스케치와 가소성(plasticity)이 느껴지는 -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컴퓨터 보다는 손으로 그린, 건축 재현에 있어서 드로잉은 드로잉. 그 자체로서 물질성을 앞세운 작업방식을 고수한다. 평면계획상에서도 - 언뜻 불완전에 가까운 -  틀에 맞춰지지 않는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이는 탄탄한 건물로 (재)구축된다. 멜클리의 근작은 포맷 그대로 학생작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학생작들을 무명씨의 건축을 바라보듯 하는 건 아닐까?) 단순 형태 안에서 끝없이 컨벤션을 부수는 복잡한 디테일들은 이대로 안주하지 않는 스승의 태도를 보여준다.

책은 독일어-일본어의 2개 국어로 되어있다. 그래서 국제적인 자료로서 보다는 일본 내수용 (스위스 건축교육) 연구서처럼 느껴진다. 디자인이나 판형은 ETH 의 Year book 형식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다만 분홍빛 색상이 내부 이미지와 페이지 공간을 분리시키거나 (스튜디오 작업섹션)또는 흰페이지에 분홍배경의 이미지로 합치하는 (멜클리 본인의 작업) 역할을 하는 것은 특이한 점이다.

Tuesday, June 10, 2014

Simon Ungers : 건축가의 죽음

Simon Ungers의 작업을 담은 GG Portfolio 시리즈.

건축가 OMU (Oswald Mathias Ungers) 가 Cornell 의 건축과 총장으로 있을 당시 동 대학을 졸업한 그의 아들 Simon Ungers는, New York 과 Cologne 을 기반으로 건축과 미술작업을 동시에 해왔다. 몇 개 컴피티션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고 건축 뿐아니라 녹슨 철 (corten steel) 조각, 조명 설치작업등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Tom Kinslow와 함께 만든 T-house 는 그의 철 조각을 실제 건물화해낸 대표작이라 부를 만할 수 있을 것이다.  Cornell 대학이 있는 Ithaca 시에 머물던 시절,  싸구려 시멘트 벽돌로 인상적인 Cube hourse를 만들었고, 또 근처 Winery의 실내장식을 만들기도 했다. (*)  그가 유대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공동 우승자이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는 Harvard 대학에서 가르쳤고 Syracuse, Cornell, Rensselaer 기술대학등에서 교육자로서의 위치도 다져갔다.

남 부러울 것 없어보였던 그가 부인인 Janet O'hare를 남겨두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것은 2006년 3월 6일의 일이다. 57년 5월 8일에 태어났으니 만으로 49세의 나이였다. 건축가에게는 무척 젊은 나이이기에 주변의 충격은 무척 컸다.  그가 오랜 기간 건강악화로 고생중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는 비밀에 쌓여있다. 어쩌면 모두 그 순간을 기억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그의 모습에 대해 코넬 대학의 교수들(***)은 웃으며 그의 학업과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고 전한다.
"그는 늘 선생들의 의견에 의문했다. 자기 작업에 대해 이유 묻는 것에 맞서 끝까지 제 주장을 관철했다. 첫 학기 부터 그의 작업은 당시 유행하는 양식들과는 무척 달랐다. 이에 조교가, '마치 러시아 구조주의자의 작업같군.' 이란 말을 했을 때도 그는 그 말이  시대착오적인 태도를 비아냥거린다 받아들이기 보다도 '그것 참 멋있는 말이로군.' 하는 반응을 보였다. (****)"
그의 작품들이 갖는 기념비적 스케일, 순수한 기하, 불가능해보이는 구조 (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 문제 많은 질료(콜텐 스틸이나 매우 싼 재질들)등은 어느 하나 타협이라는 것을 찾기 어렵다. 마치 콘템포러리 건축의 이미지 콜렉션 유행에서 자주보이는 위 요소들은 그의 생전 유행하던 양식을 생각하면 조금 고개를 갸웃거릴 만 하다.

그는 건축이 그 자체로 말을 하길 원했고, 실천을 미술관의 전시, 본인의 건축 그 자체로 동시에 보여주길 원했다. 베를린에서 치뤄진 몇 차례 그의 미술 전시는  거대한 I 빔,  떠있는 벽, 가로지르는 들보,  9 X 9 X 9 사이즈의 큐브와 긴 막대형의 조명등으로 관객의 시선을 가리는 공간 연속성의 장애"물"로서 일종의 가상 건물 실험이었다.  관측자의 시선에 따라 형태는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보다는 은근한, 형태 자체에 내제된 (컴포넌트들의) 맥락에 의해 이따금 사라지거나 재위치하며 완성되어간다.  마치 미니멀리즘 조각 전시처럼,  순수한 형태주의와 그것을 바라보는 시점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책이 출판된 후의 작품으로서 죽기 직전, 그는 일련의 코르텐 조각의 연장선으로 보이는 코르텐 건물 연작, Heavy Metal 을 선보인다. (*****)  50 x 50 미터로 짜여진 삼각, 사각, 원기둥의 순수한 형태들은 마치 그것이 놓일 곳이 도심이건 자연이건 아무 상관도 않은체 일관된 양식의 담담한 렌더링으로 표현되었다. 완벽한 상징도, 또한 상징이 파편화된 형상도 아니다.  마치 제 자신의 죽음을 조용히 준비한 작업처럼 나란히 어떤 연극처럼 혹은 장례 묘비들처럼 가로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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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ig Owens 는 알레고리(allegoriy)를 느슨해진 체 거의 폐허화된 미적전통을 붙잡는 것에 비유했었다. 또 Walter Benjamin은 알레고리를 독일 바로크 비애극에서 벌어지는, 상징 - 권위와 역사인식에 입각한 일관된 방식으로 사용되는 - 과 거리두는 미적행위라 말했다. 알레고리란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거부하지만 동시에 그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다만 한 때를 드러내며 또 이전 상태로 되돌려놓을 뿐이다.

Simon Ungers 의 순수한 형태는 - 마치 Ledoux나 Le Corbusier로 이어지는 건축가의 순수주의를 연상케한다.  - 비록 상징적(iconic)이라 쓰여진 카테고리에 놓일테지만, 동시에 공간상황에서 Simon의 형태는 알레고리적으로 개입한다. 주변부 맥락에 맞서는 순수한 형태는 제 자신을 자연스레 병치한다. 여기 당대의 많은 건축가들이 연출한 아이러니나 노스텔지어는 없다. 오히려 과거의 기억들을 숭배하는 동시에 정복해내는, "기억하는 정신"만이 남는다.

이는 아도르노 (Adorno) 의 Minima Moralia - 현대 미적"행위"에의 가능성에 대한 주장 - 보다 더 신랄한 상황을 드러낸다. 아도르노는 말한다.
"아름다움이나 위로는 더 이상 없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공포를 직시하고 인내하며, 그 '부정성'에 대한 단호한 의식 속에서 - 단지 무엇이 더 좋은가하는, 그 가능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선만을 빼고서. "
어떤 책임의식없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 상실과 파멸을 그대로 '트레이스' 하며 직시한다. 그의 건축은 상상과 실제의 공간 사이에서 부유하며 우울한 매력을 채워나간다.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순수하고 또 우아한 작업을 "아니오" 소리치며 밀어넣고 있다.

(*) 와인 저장고안에 들어가는 작은 집. 즉 집안의 집이었다. 이는 그의 아버지 OMU의 영향이 드러난다.
(**) 이후 재투표에서 그의 작품은 선정되지 못했고, 그 당시 선정된 작업마저 무산되어 새로운 경쟁심사가 열렸고, 거기서 Peter Eisenman의 안이 당선된다.
(***) 그가 재직중이던 시절 교수진은 그와 같이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거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 러시아 구조주의에 대한 일면식이 없던 그는 이후 도서관에서 발견한 구조주의작업들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 지어지지 못한 이 상상의 건물들의 도면과 모델들은 50미터 안에 정확히 들어가는 "고요한 건축" 과 비정형으로서 불가능해 보이는 구조를 뽐내는 "말하는 건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SF MOMA 콜렉션에 수록되어 있다. 링크는 이쪽.

Friday, April 25, 2014

KAZUO SHINOHARA : 잡지

2014년 봄, JA는 시노하라 카즈오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망한다.


책 전반적으로 선수를 뺐겨 망연자실해 있는 분위기를 감출 수 없다. 이미 시노하라 카즈오의 작품은 예전 이 블로그를 통해 리뷰했던 Gustavo Gilli의 잡지에서 일본 건축가들이 보아도 놀랄 정도로 깊이있게 다뤘던 적이 있었다.  그 점에서 이번 이슈는 어느정도 동어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서구에서 최근들어 자주 거론하는 시노하라 카즈오에 대한 이야기를 차일 피일 미룰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서문의 오쿠야마 신이치의 글(*)도 2G의 이야기를 우선 언급하고 있으며, 평소 양의 2배에 달하는 굵기나 이미지, 프로젝트의 양도 잡지 2G를 몹시 의식한 꼴이다.

어쨌든 시노하라 카즈오는 일본 건축가이기에 일본으로선  2G에서는 다루지 못했던(**) 여러가지 모습을 덧 붙여 전체적으로 조망하려 한 것으로 뵌다. 서문은 이미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들에 덧 붙여, 시노하라 작품의 제 1-2-3 양식으로 이어지는 타임라인 다이어그램을 페이지 하단에 구성한다. 또한 비 주류 급부에 있는 건축가가 어떻게 "잡지"라는 미디어를 적극 활용했는지 언급한다.

평소 JA답지 않게 콘텐츠 양에 욕심을 부려 시노하라 카즈오의 모든 작품들을 2G보다 훨씬 적은 양의 페이지에 모두 실었다. 그러다보니 프로젝트 하나 당 한 페이지에서 두 페이지 정도, 큰 사진에 간단한 도면과 설명을 여기저기 흩뿌린 다소 실망스러운 구성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러모로 접하기 어려웠던 그의 제 3양식, 미완 프로젝트의 렌더링과 도면, 예전 잡지에 실은 설명 그대로를 다룬 것은 이 책을 2G와 함께 구매해야 할 이유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2G에 대응하는 부록이나 후기와 같은 인상을 감출 수 없는, 망연자실해 보이는 이유이다.)

시노하라 카즈오는 매스 미디어를 이용해 자신을 홍보하는 스타형 건축가였다기 보다는 은둔형 건축가였다. 하지만 막상 그의 비주류 이미지와는 정 반대로, 당시 출판되던 건축 잡지들에 골고루 꾸준히 자기 작업을 기고하고 있었다. 단순히 기고 수준이 아니라 그는 잡지-퍼블리싱에 무척 집착하는 모습마저 보였는데, 그 이유란 아마도 - 1) 그의 작품들은 일반인이 방문하기엔 어려운 개인소유 주택이기도 하고, 2) 잡지의 사진들을 통해 그려내는 시점이야 말로 건축가가 선택한 건축을 바라보는 방법에 다름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시노하라 카즈오는 출판과 인쇄 미디어를 통해 실제 건축(물)을 능가하는 가상계 좌표를 획득하려 했음이 맞을 것이다. 이른바 허구의(***) 건축. 시노하라는 자신의 주택이 가상의 세계 (잡지 속에서만 존재하는 공간)를 구축하는 씨앗으로서, 또 이를 통해 개개인 욕망을 충족하는 예술-장치임을 거듭 강조한다.  물론 그 정기간행물 속의 가상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다시 높은 수준의 미감과 시점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에게 있어 실제 (actual) 와 허구 (fictional )의 공간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JA의 머릿글을 비롯한 전반적 책의 구성도 그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일부 이해가 간다.  이번호는 머리말을 빼곤, JA를 비롯해 신건축, 주택특집, A+U, GA등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일본내 건축 정기 간행물을 적극 활용한 시노하라 카즈오를 담는 것이 바로 그 목표처럼 보인다. 책 표지의 전면은 그의 요코하마 선박 터미널의 공모전 출품작(****)을, 그리고 후면은 그간 참여한 잡지의 표지들을 모아 실어두었다. 그리고 내지는 모두 잡지에 출판하던 시절 그대로를 (시노하라의 설명글과 함께) 갈무리 했다.

이는 앞서 2G가 시노하라 카즈오라는 인물, 메타볼리즘이라는 거대한 흐름 한켠에 있던 비주류 건축가를 또 다시 잡지를 통해 현대에 훌륭히 부활시킨 것에 대한 일종의 겸손한 답가-기념비같다.


(*) 2G의 서문도 그가 맡았었다.  JA 서문의 제목은, "메타랭귀지의 향방 - 재고 [주택은 예술이다.]"
(**) 2G는 그의 1-2 양식의 주택들만 주로 다루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서문의 오쿠야마 신이치가 시노하라 본인이 언급했던 "현실공간"과 "잡지의 공간," 허구 좌표계를 통해 주택이 사회적 위치를 점유하는 방법론을 불러들인 선택이 옳았다고 보인다. 시노하라의 건축과 건축가 시노하라. 양면을 드러내는 전략이다.
(****) FOA가 최종당선되어 설계를 맡은 바로 그 공모전이다. 만일 시노하라의 공모안이 당선되었다면 일본 건축계 지형은 또 어떻게 변하였을까.

Sunday, April 6, 2014

1994 : Pritzker

Zodiac 12를 통해 바라본 1994년.


최근 1994년의 사회 문화 회상이 무척 열풍이었다. 이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이라면 1994년의 세계-건축계가 어떠하였을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잡지 Zodiac은 Adriano Olivetti의 후원으로 2년마다 발간했던 건축저널이다. (*) Milan 공대 교수인 Guido Canella가 편집을 담당하고 이탈리아 디자이너인 Massimo Vignelli가 디자인을 맡아 당대와 모던을 병치했다.  Zodiac 12는 1994년에 출간되었으며, 당시 사망하여 건축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Manfredo Tafuri (1935 -1994) 를 추모하는 추모문을 시작으로 1979년부터 1994년 까지의 프리츠커 수상자들의 연혁과 작품세계를 있는 그대로 조망한다.

프리츠커 상에는 관심이 많아도 79년부터 94년까지의 프리츠커 수상자들 면면을 자세히 살펴본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수상자들 리스트부터 낯설다. 기억 속에서는 저만치 멀어져 버린 이들도 많다. 추억이라기보다는 이질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1979, Philip Johnson, 미국
1980, Luis Barragán, 멕시코
1981, Sir James Stirling, 영국
1982, Kevin Roche, 미국
1983, Ieoh Ming Pei, 미국
1984, Richard Meier , 미국
1985, Hans Hollein, 오스트리아
1986, Gottfried Böhm, 서독
1987, Kenzō Tange, 일본
1988, Gordon Bunshaft, 미국 / Oscar Niemeyer, 브라질 / 공동수상
1989, Frank Gehry, 캐나다 - 미국
1990, Aldo Rossi, 이탈리아
1991, Robert Venturi, 미국
1992, Álvaro Siza Vieira, 포르투갈
1993, Fumihiko Maki, 일본
1994, Christian de Portzamparc, 프랑스

프리츠커의 국제적 위상이 대단한 요즘에 비하면 어딘지 여러모로 어색하지 않은가? (나는 지금 수상자들의 자격이나 그들 건축물의 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해에 Oscar Niemeyer와 공동 수상한 Gordon Bunshaft의 일화는 더더욱 이상하다. (**)

1994년을 회귀하는 열풍에 이끌려 우연히 꺼내든 건축저널이 타푸리의 죽음을 시작으로 다시 79년부터 94년까지의 회고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라지만 기이하다. 건축의 1994년은 모두가 공감하는 추억의 좌표라기보다는 다시금 되돌이표가 놓인, 응답할 수 없는 상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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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odiac 저널은 1989 - 1999 년 10년간 발간되었으며 21호가 그 마지막이다.
(**) Gordon Bunshaft 는 SOM에 소속된 프로젝트 담당자로 예일 희귀서적 도서관, Lever House 등 혁혁한 모던 타이폴로지를 일구어왔다. 회사를 퇴사한 뒤 그는 프리츠커재단에 직접 익명으로 전화걸어 - 이 후에 자신임을 밝혔지만 - 제 자신을 추천했다. (재단측은 그 어느 누구의 추천도 반드시 받고, 검토한다. 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브라질의 Oscar Niemeyer와 공동수상한다. 그는 역대 수상자 중 가장 짧은 소감을 밝혔다. 소감문은 다음과 같았다.
" 1928년, 나는 MIT 건축대학에 입학했고 건축인생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오늘, 60년뒤, 이렇게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였다. 나에게 훌륭한 상의 영예를 안겨준 프리츠커 가문과 심사의원들께 감사한다. 이는 내 건축인생의 캡스톤 (관석, 피라미드 최상층부에 올리는 돌)이 아닐 수 없다.  소감은 여기까지다." 

Saturday, March 15, 2014

DOMINO : 10 11 12 13 14

도미노가 5호까지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들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독립출판"이라는 흐름이 서서히 가시화되기 (내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는 2009년.) 몇 년 전, 웹에서는  Indexhibit 과 같은 단순한 포트폴리오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그래픽 디자이너와 동 학과 학생들이 자신들의 출력물 - 어쩌면 해외 디자이너 홈페이지의 흉내였을 수도, 어쩌면 클라이언트를 상상하며 작업한 쉐도우 복싱 같은 것이었을 수도, 어쩌면 망해버린 프로젝트의 한풀이 같은 것이었을 수도 - 을 전시하는 유행이 이미 퍼져 있었다.  그것은 소위 컨벤션화 되어버렸던 "학생작품"과는 전혀 다른, 무척이나 신선한 기운이었다. 웹이라는 막강한 레퍼런스 편집-퍼블리싱 툴을 활용하는 신세대들은, 구세대가 순차적으로 밟아야 한다고만 여겼던 어떤 단계를 몇 발자욱 훌쩍 앞서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미 독립출판 행사를 훌륭히 마친 The Book Society 는 2010년, 같은 이름의 서점으로 탄생하였다. 책방 your- mind 도 온라인 책방에 이은 1회 언리미티드 에디션과 동시에 서점을 오픈한 때가 바로 이 해였다.  또한 홍익대학교 한국 디자인 학회 디자인 담론 특별세션으로 제2회 DD포럼 "옆으로 가는 디자인 교육" (이전엔 상상마당) 도 열렸다. 디자인 현장도 아니고 또 학계도 아닌 기묘한 좌표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학회공식행사에서 이야기 나누었고, 당시 관람객으로 앉아있던 나 또한 이 현상의 증인이 될 수 있었다.

2010년은 한국서 아이폰이 출시가 된 첫 해였다. 디자이너들은 미 애플사의 하드웨어 만듦새를 만끽하며 새로운 인터페이스-그래픽에 열광하였고, 전통적인 국내 블로그와 싸이월드에 기반한 게시판형 커뮤니티보다 SNS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트위터를 위시한 SNS는 바야흐로 텍스트 중독자, 언더 밴드 뮤지션, 온라인 유명인사, 인터넷 논객, 예술 비평가, 연예인, 사회 거물들이 뒤섞여 이들의 일상회화가 단지 텍스트만으로 (마치 부서진 책처럼) 렌더링 되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이로써 독립출판이 유통될 최소한의 온-오프라인 인프라, 그리고 객관적인 담론도 가시화 되었으며 파편화된 콘텐츠를 모으고 이어주는 가교도 어느정도 마련되었다 - 고 볼 수 있었다.  이듬해에 나온 비정기 문화잡지 "도미노"는 그러므로 충분히 나올 수 있을 법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언제 그만 나와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예상했을 법 했다.  예의 독립출판은 그 유행 궤적의 끝, 거품이 이미 어느정도 예견되었다.  많은 동인지가 그러하듯, 단발성으로 끝나는 기획이 허다했다. 긴 호흡, 정기 간행물로서의 가능성은 콘텐츠의 꾸준한 확보가 절실했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도미노라는 잡지는 여전히 독립출판이라는 태그를 달고 나오고 있다. 편집 동인과 콘텐츠 제공자들이 서로 묘한 긴장감과 물리적 거리를 두고 공전하며. 서로간의 긴장감을 제어하거나, 혹은 그대로 드러내 버리는 잡지 특유의 형식-형태적 완성은 그래픽 디자이너 김형재의 어깨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