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24, 2023

가름끈: 초타원형 10년


정현 개인전 2.5 도록
«가름끈 / TASSEL / シオリ»
정현, 2023, 245 × 345 mm, 4쪽
디자인: RW(리센트워크)

2023년 2월 21일 부터 일주일간 전시된 정현의 개인전 2.5 «가름끈 / TASSEL / シオリ»을 위한 도록. 초타원형 출판 10년을 기념하는 전시와 동명의 인쇄물이다. RW(리센트워크)가 디자인한 해당 인쇄물은 타블로이드 판형보다 조금 작은 크기이다.

전시 도록을 굳이 인쇄물이라 칭하는 까닭은, 일반적인 도록으로 보기에는 너무 불완전해 보이고, 딱히 그렇게 보이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흑백 인쇄, 가로로 늘어선 이미지, 단순 표제의 나열, 설명 없음, 제본이 필요 없는 양면 인쇄된 한 장의 종이가 반으로 접힌 본 인쇄물은 아무리 보아도 어떤 형식을 표방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리센트워크는 아무 코멘트도 남기지 않았으며, 도록 디자인에 대한 어떠한 비평도 딱히 바라지 않았다.

일견 '무형식의 형식'이라고 해야 할 수준의 "디자인 없음" 상태는, 디자인 포화 상태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국내 전시 기록물 경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그런데도 클라이언트의 모든 요청사항은 잘 반영하고 있다. 즉, 도록의 디자인 보다는 개별 프로젝트의 순서와 방향성, 그리고 물리적 크기와 재료 등 클라이언트가 모아온 이미지와 행적에 훨씬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마치 그 어떤 "디자인"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디자이너의 "죽음"과 같은 상황을 암시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선택지야말로 초타원형의 독립 출판 활동 10년 기념비를 위한 최적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초타원형 출판이 10년간 출간했던 모든 책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는 본 인쇄물의 최종에는 당연히 «가름끈 / TASSEL / シオリ»이 놓인다. 그런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책 표지인 전시장 사진이 있다. 이는 이어서 펼쳐지는 현실의 도록 4 페이지 이미지들과 마찰하며 매우 큰 의문을 자아낸다.

이 도록의 "얼굴"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해당 인쇄물은 오프라인에서 일부 배포될 예정이며, 건축가 정현이 참여한 전시, «젊은 모색 2023: 미술관을 위한 주석» 작가 인터뷰 코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배포처: 미정

Wednesday, March 24, 2021

YNLDLHRS: YES/NO/LIKE/DISLIKE/LOVE/HATE/REPLY/SHARE

YES/NO/LIKE/DISLIKE/LOVE/HATE/REPLY/SHARE: THE PORTRAIT OF KOREAN POP CULTURE 2000-2020
네/아니오/좋아요/싫어요/사랑/혐오/댓글/공유: 2000-2020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
『네/아니오/좋아요/싫어요/사랑/혐오/댓글/공유: 2000–2020년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

발행일 2020년 12월 24일
발행인 정현
발행처 초타원형
등록 2012년 8월 3일 제2012-000267호
이메일 info@superellipse.net
홈페이지 http://superellipse.net

글 김일림, 윤원화, 정현, 최정윤, 콘노 유키
번역 진균능(영어), 장자미(중국어), 하성호(일어)
도움 이현구
디자인 신신

ISBN 979-973189-0-0-003650
정가 48,000원

ⓒ 초타원형, 2020

이 책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후원 서울문화재단

초타원형
정현의 프로젝트
+타이 밴더빌트, 김상훈

초타원형 출판은 2020년 5월 2일 부터 6월 2일까지 아트딜라이트에서 열렸던 전시 《네/아니오/좋아요/싫어요/사랑/혐오/댓글/공유: 2000–2020년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과 동명의 제목을 가진 책을 선보인다. 대중문화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받은 214명 작가의 작품들을 지면에 전시한다는 기획하에 작가들이 스스로 고른 2000–2020년 사이의 출품작 4점을 동등한 위계로 전개하는 본 출판물은, 총 856점의 컬러 이미지가 수록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본 도서는 국내외 컬렉터들과 유수의 갤러리에 전달될 예정으로 한국의 대중문화 기반의 예술을 널리 알리고자 초타원형에서 2년에 걸쳐 기획한 "지면 전시"다. 전시는 작품 정보들만으로 전개되는 INDEX, 작품 이미지를 가감 없이 발표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 IMAGES를 대칭 축으로, 김일림, 윤원화, 최정윤, 콘노유키의 글이 실리는 TEXTS 챕터와 작년 전시 기록이 먼 과거(또는 미래)에 촬영된 영상처럼 스쳐 지나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한, 중, 일, 영 4개 국어 번역이 수록되어 총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하여 선택한 종이, 컬러/흑백/UV/박 인쇄, 양장, 1쌍의 가름끈 등 까다로운 환경에서의 다양한 인쇄와 제본 기법이 특징적이다. 20㎠ 정사각형 판형에 책의 두께만 6㎝에 달하여 마치 사전과도 같이 보이는 책은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신신"이 모든 디테일을 유념하며 아름답게 만들어 준 또 하나의 작품이다.

본 도서 『네/아니오/좋아요/싫어요/사랑/혐오/댓글/공유: 2000–2020년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은 3월 16일 부터 초타원형 갤러리 스마트스토어(프로필 링크)에서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며, 4월부터 교보, 알라딘, 예스24 등의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한정 판매할 예정이다.

구매처: 교보문고, 알라딘,
초타원형 스마트스토어, Yes24

Thursday, March 5, 2020

SET PIECE: 세트 피스

SET PIECE 세트피스
판형 210*297mm (A4)
글 윤원화, 정다영
번역 유지원
사진 김경태
디자인 슬기와 민
인쇄 제본 으뜸 프로세스
ISBN 979-11-966852-8-7-03600
정가 30,000원
© 초타원형, 2019

본 출판물의 저작권은 작가와 초타원형에 있으며,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법에 의해
무단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본 출판물은 2019년 10월 10일 부터 31일까지
서울 아트딜라이트에서 열린 정현의 개인전
《세트 피스 》를 위한 도록입니다.

후원 서울문화재단

SUPERELLIPSE
Project by Hyun Chung
+ Tei Vanderbilt, Sanghoon Kim

『SET PIECE』는 2019년 10월 10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이태원의 아트딜라이트(Art Delight)에서 열린 건축가 정현의 개인전 《SET PIECE》의 도록이다.

2012년 정현이 설립한 프로젝트 초타원형(Superellipse)은 디지털 공간에서 작성된 텍스트와 이미지를 엮어 물리적 공간에 담아내려는 기획을 진행했다. 2014년 『PBT』 출간을 통하여 본격적인 독립 출판사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뒤, 2016년부터 1년간 그래픽 디자이너 김병조, 김형재, 배민기, 홍은주, 사진가 김경태 등과 협업하며 4권의 ‘CC 프로젝트’ 책을 출판하였다.

그간의 책들이 독립 출판의 소비자이자 생산자로서 내/외부자의 시점을 통하여 활동 배경이 되는 도시 서울을 텍스트와 이미지로 기록하려고 했다면, 전시 《SET PIECE》는 책과 책이 놓이는 가구, 그리고 가구가 놓이는 배경을 출판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거대한 도시를 압축하듯 이미지와 텍스트를 모아서 만든 책, 책을 기점으로 확장하는 사물-가구가 만드는 공간. 전시는 이 둘을 비교할 수 있도록 실물의 책, 책의 이미지, 책에서 연유한 다양한 오브제를 한 번에 배열한다. 건축 큐레이터 정다영과 미디어 비평가 윤원화는 이러한 실천을 「축소 지향의 건축/건축가」, 「건축 책에 관한 단편」이라는 제목으로 각자의 시점에서 비평하고 있다.

공간의 창조자이자 사물의 생산자, 동시에 최초의 소비자이기도 한 정현은 전지적 시점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다시 책으로 순환시키고자 한다. 그는 전시를 담는 책이 단순 기록을 넘어서 설계자 정현의 평면적 시점, 저자 정다영과 윤원화의 퍼스펙티브적 시점, 그리고 사진가 김경태의 초인적 시점이 겹쳐진 풍경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슬기와 민은 그러한 개념을 책의 물리적 요소들을 활용하여 구체화한다. 그것은 소박하며, 그 누구라도 재연 가능한 방식이다. 텍스트와 이미지는 전시장 속 가구와 책 등에서 연유한 감각을 따라 선정한 A4 표준 판형(210ⅹ297밀리미터)과 44쪽이라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3가지 다른 질감의 종이를 통하여 구현된다. 엠보스 패턴 종이에는 제목이, 백색 모조지에는 텍스트가, 무광택 도포지에는 이미지가 인쇄되는 식으로 3종의 종이는 각자 별개의 내용을 담는다. 지면의 중앙을 기준으로 질감과 명도가 미묘하게 다른 종이와 콘텐츠가 앞뒤로 중첩되는 모습은 형식적 단순함 뒤에 놓인 세밀한 장치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안무와도 같다.

책에 사용된 폰트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국·영문 표준 활자체인 산돌 고딕네오와 노이에 하스 그로테스크(Neue Haas Grotesk)를 사용하였다. 이 역시 전시 공간 속 물리적 특성을 반영하며 누구나 재연 가능한 결과로 드러난다. 지면에 놓이는 위치와 방식에 따라 본문의 작은 글씨는 지면의 꼭대기에 가볍게 매달리는 한편, 표제의 큰 글씨는 무게감 있는 구조체로서 아래로부터 쌓아 올려진다.

도록 『SET PIECE』의 요소들은 정현이 만든 책, 사물, 가구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엄밀성, 정확성, 경제성과 대구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표준값의 조합과 그것이 만들어 낼 새롭고 다양한 패턴을 약속한다.

무엇이 담기더라도 상관없다. 그것이 설령 시간을 분할하고 거리감을 압축시켜 공간감을 상쇄시킨 초고화질의 책, 사물, 전시 공간 이미지 그 자체라도 말이다. 모든 이미지는 한 페이지, 혹은 절반으로 나누어 담기며 다층적 의미가 재생산되는 풍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초창기 독립 출판물 진(zine)의 제본 재료인 스테이플러를 축으로 하여 매달려 있다는 점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이 얇은 금속 하드웨어는 건축을 위한 견고함(firmitas), 유용성(utilitas), 아름다움(venustas)과 상반되는 경쾌함, 경제성, 평범함을 상징한다. 그것은 아직 깨어지지 않은 설계자의 꿈을 이루어 줄 열쇠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구매처: 알라딘

Thursday, November 1, 2018

CC : COPY CAT

CC COPY CAT Superellipse Books 2016-2017 Seoul


CC
판형 130*180*35
초판 1쇄 펴냄 2017년 6월 30일
저자 강정석, 길형진, 김건호, 김영준, 김형재, 깡통, 듀나, 박준수, 박세진, 복길, 유진, 이상우, 정현, 초타원형 출판, 최재형, 최준혁, 최효기, 팝콘, 한소휘, 홍은주, Danjyon Kimura, EH(김경태)
기획 정현
편집 손영민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 (유연주 도움)
인쇄 으뜸프로세스
펴낸이 정현
펴낸곳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
출판등록 2012년 8월 3일 제 2012-000267호

본 출판물의 저작권 및 판권은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에 있으며,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법에 의해
무단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Copyright © Superellipse Books. 2017. Printed in Seoul, Korea.
ISBN 979-11-953312-8-4-03810

KRW 80,000



CC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특징을 네 권의 책으로 담아내는 건축가 정현의 기획명이자 시리즈 마지막 책 제목이다. 

1997년의 가을, 언젠가 사라질 여의도의 건물을 기록하려던 것에서 출발했던 『CC』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7년이 되어서야 실행되었다. 기획안이 구체화된 시기는 정현의 첫 저서였던 『PBT』 출간 후 1년이 지난 2015년 가을이다. 당시 그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건물 옥상에서 본 기획에 참여하는 디자이너, 편집자와 함께 책을 만드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바로 무심하게 모든 것을 담아 버리는 프레임 구조, 차원을 넘나드는 콘텐츠, 이질적인 것들의 집합 상태, 변형하는 규칙으로 만들어진 건물 같은 책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후 1년간 SNS로 수많은 사람들과 책의 기획안을 공유하여 글과 그림 등을 모아 왔으며, 그 형식과 내용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다. 자신이 사는 공간과 사라진 도시 속 공간들에 관한 낙서, 건축가, 철학자들의 인용문, 짧은 소설과 등장인물, 학창 시절 친구들의 글, 서시, 이미지 도판, 도표, 온라인상에 떠도는 소문들, 그리고 고양이 이미지 등 갖가지 콘텐츠가 쌓였다. 하지만 도시 계획과 그 실행 과정이 그러하듯, 이러한 무질서한 콘텐츠를 엮어 낼 때 일부는 갑자기 사라지거나 변형되거나, 왜곡되거나, 위계가 역전되는 등 예측하기 힘든 양상을 드러낸다. 따라서 발행인은 콘텐츠와는 무관하게, 단지 남겨진 형식과 프레임만 가지고도 유기적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생산될 수 있도록 책의 스타일을 구조화하기를 원했다. 이에 대응하여 그래픽 디자이너 홍은주와 김형재는 개념을 구현할 때 맞닥뜨리는 페이지 형식과 같은 매체적 특징을 훨씬 더 강조하거나 과감히 은폐한 결과물로서의 책을 디자인했다.

『CC』는 130×180×35라는 특정한 크기와 두께로 설정되었다. 흔히 우리가 책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무게나 형태를 약간 벗어난 규격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보자마자 묵직한 사전을 떠올릴 것이고, 또 다른 이들은 90년대 무단 복제되던 만화책 단행본의 추억에 잠길 수도 있다. 양장 제본된 이 책은 경건하게 받아들여야 할 종교 서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딱딱해 보이지만 가벼운 내용의 텍스트나 맥락 없는 콘텐츠가 담겨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법한 크기와 부피에 대해 정현은 “『CC』는그동안 내가 해 왔던 출판물처럼, 마치 ‘책 같은 것’을 극한까지 추구한 것(*)이다.” 라고 대답한다.

책을 감싸는 앞 뒷면의 금박 글자, 남산서울타워와 롯데월드타워라는 두 거대 기념물 건축 브로마이드, 액자식 구성, 이미지와 텍스트의 분명한 구분, 또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완전한 융합, 파노라마 삽지, 흑백과 컬러의 조합, 가짜 질료성, 파손되기 쉬운 약한 재질 등 정교하게 설정된 모든 요소들은 『IMG』, 『BGIMG』, 『AIR』 세 권의 책을 제작하면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전체 인상과 달리 부분적으로 이질적인 조합들이 맞닿아 있는 내부에는 규칙성을 찾기 어려운 숫자들이 놓여 있다. 숫자들은 긴 계획 과정을 드러내기 위한 지표로서 잊힌 과거의 기록, 또는 몇 가지 가능성 있는 미래를 암시한다. 

최초의 디자인 회의에서 『CC』는 ‘그저 텅 빈 방 한가운데 놓일 법한 130×180×35밀리미터의 아름다운 오브젝트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오랜 시간 끝에 완성된, 붉은색으로 양장 제본된 인쇄물의 밀도와 무게감은 그동안 독립 출판에서 보이던 전형성을 기대하는 이들의 예상을 비껴 나간다. 2017년 현재, 책방과 커피숍, 쇼핑몰과 자본/반자본이 합성된 서울의 기묘한 공간들은 모든 책을 블랙홀처럼 빠르게 흡수하다 못해 압착시키려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CC』는 이 변화의 흐름과 급격한 속도에 반발하며 오래된 책의 정교한 복각판, 또는 인터뷰나 사료 등이 잔뜩 추가되고 리디자인된 한정판 책의 재현물과 같은, 익숙한 책의 모습으로 중심의 텅 빈 공간을 향해 천천히 조금씩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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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후기, 윤원화(37세, 서울 거주)(**)  

CC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4권의 책을 보는 데에 딱히 정해진 방법은 없다. 이를테면 이것은 대략 130×180×35mm 크기의 입방체 4개이기도 하다. 책을 보관하는 공간이 한정된 독자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크기다. 심지어 책을 읽기도 하는 독자라면 책을 작두로 썰어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랬다). 책에 들어가는 낱낱의 이미지와 텍스트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책이 이렇게 크고 두껍게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 위아래 여백을 쳐내고 반복되는 페이지를 잘라내면 현재 부피의 절반 가까이 살이 빠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축소된 형태의 4층 책탑은 나에게 작고 익숙한 만족감을 줄 것이다. 책 더미에서 불필요한 것을 솎아내어 공간을 발굴하는 것은 나의 일상적인 투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IMG』와 『BGIMG』와 『AIR』와 『CC』는 그렇게 확보된 귀중한 공간에 원래 크기 대로 들어갔다.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소비자로서 본전 생각이 나서 그럴 수도 있고, 이 책들에 투여된 거의 부조리한 분량의 돈과 시간과 노동과, 그것이 실체화된 3kg 상당의 덩어리가 가진 고유의 존재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비논리적 크기는, 모든 견고해질 기회도 없었던 것들이 녹아 사라지는 세계에서 태동한 하나의 생존 전략으로 봐야할 것이다. 

어떻게 공간을 확보하고 그것을 무엇으로 채우는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각자의 집 또는 방을, 또는 도시 전체를 타임랩스 영상으로 기록한다면, 세상은 그런 삼차원 테트리스의 게임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포켓코인으로 포켓몬 박스를 업그레이드 해서 더 많은 포켓몬을 담는다. 또는 가족이 늘어나서 집을 키운다 (옛 속담에 30대는 30평, 40대는 40평, 50대는 50평이라 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대체로 물건을 줄이는 길을 택해 왔다. 어디까지가 천성이고 어디까지가 환경의 산물인지는 모른다. 납작한 아파트 실내에 차곡차곡 쌓여서 천천히 변색되는 물건들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꼈던 유년기의 영향일 수도 있고, 2년 단위로 방에서 방으로 옮겨 다녔던 이십대의 습관이 남았을 수도 있다.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최대한 많은 도구와 자료를 컴퓨터 안으로 쓸어담기로 결심했고, 컴퓨터를 바꿀 때마다 데이터 백업을 하지 않고 장비 일체를 폐기했다. 많은 책을 샀고 많은 책을 버렸다. 그럼에도 너무 많은 책이 남아서 이제는 아마도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잡초가 무성한 작은 정원 같은 것을 이루고 있다. 

CC의 책들은 책장 맨 아래 독립출판 섹션으로 들어갔다. 판형이 제각각이라 매년 솎아내고 즉흥적으로 재배치하기를 반복하는 곳이다. 크고 넙적한 책들은 나른하게 휘어지고 표지가 없는 책들은 본문이 구겨지고 손바닥보다 작은 책들은 틈새로 달아나는 작은 밀림 같은 곳에서, CC는 지구라트처럼 서 있다. 그러니까 일단은 납득을 하게 된다. 

내 책장이 일종의 시공간 복합체인 것처럼 CC 역시 그렇다. 다시 말해 이 불균질한 기호적 체계는 시간 속에서 볼 수도 있고 공간 속에서 볼 수도 있다. 시간 속에서 CC의 역사는 모호하고 의심스럽다. 텀블벅에서 CC 프로젝트가 공개된 것은 2016년 5월이었다. 당시 판상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건축가 정현은 텀블벅 인터뷰에서 CC 프로젝트를 그가 서울을 떠나 있었던 지난 10여 년, 다시 말해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의 서울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설명했다. 이 시기는 서울이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되고 스마트폰으로 매개되어 다양한 물리적 이벤트로 출력되고 다시 네트워크로 되먹임되는 방대한 피드백 회로가 형성되던 때다. 그 일부를 인터넷으로 따라가면서 축적된 데이터와 기억을 바탕으로, CC는 백업되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깨끗이 지워지지도 않고) 끊임없이 갱신되는 현상의 모음으로서 서울의 어떤 모형 또는 기록 보관소의 디자인 제안이 되고자 했다. 이것이 어느 정도나 거대한 야망인지 나는 설명할 자신이 없다. 혹시나 무제한의 용량와 처리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있어서 모든 것을 수집하고 편집한다면 모를까,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획 같았다. 그러니까 『CC』가 인공지능 복제 고양이 CC와 그의 인간 오퍼레이터 TR이라는 면적 없는 두 점 사이에서 구성된 것은 거의 필연이지만, 이 책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생산되지 못한 것 또한 돌이켜 보면 거의 피할 수 없었던 일처럼 여겨진다. 

『CC』는 출간 예정일이었던 2016년 10월까지 제작되지 못했고, 원래 별책부록으로 소개되었던 『IMG』와 『BGIMG』만 11월에 미리-늦게 출간되었다. 귀여운 고양이의 서울 유람기 같은 것을 기대했던 일반 후원자에게, 반복되는 강의록과 부서진 도판으로 이루어진 파본 같은 책은 대체로 어처구니없이 보였을 것이다. “운명의 2016년”이 오면 CC가 자신의 복제된 생에서 로그아웃해 영생을 얻고 TR은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시나리오는 하나의 꿈이었다. 상자에서 시작해서 상자로 끝나는 상자 형태의 꿈. 2017년 6월에 뒤늦게 종결된 『CC』의 한 장에서 CC는 “흘러내리지 않고 몸이 꽉 끼는 상자의 편안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상자의 이미지는 하얀색 입방체 형태의 인형뽑기 기계가 끝없이 이어지는 하얀 방으로 연결되고, 무인양품과 그것을 카피한 자주 브랜드에 대한 상념으로, 다시 종이 상자로 만들어진 고양이 아파트의 사진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장에서는 CC가 서울의 모든 건물들이 “흰색 상자로 변하는 장면을, 혹은 검은색 공간으로 녹아들어가는 장면을 천천히 지켜보았”던 기억이 언급된다. 그것은 달리는 차 안에서 눈 쌓인 서울을 촬영한 흑백의 수많은 사진들로 이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CC의 죽음과 사후에 대한 TR의 이야기가 아주 오래 전 일처럼 반추된다. TR은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쓴다. “그는 전뇌 공간의 느낌이 마음에 드는 상자 안에 꽉 끼어 있는 것처럼, 마치 천국과 같이 편안하다고 했지만 실제론 중세 종교화의 천국도처럼 지옥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2017년 연말에 트위터에서 지난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는 것은 인간이 만든 가상현실이라는 요지의 글을 본 적이 있다. 논리적으로는 그에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해가 바뀐다는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인간은 자신의 수명을 견디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원래는 CC의 죽음도 그렇게 가상적이지만 실효성 있는 명목상의 분절로서 고안되었을 것이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타임라인에 절취선을 긋고, 일정 시간의 타임라인 전체를 스크랩해서 임의로 조각내고 이어붙여 공간적으로 재배치한 근과거의 파노라마 앞에 섰을 때, 그래서 타임라인에 집어삼켜지지 않고 그것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 바깥의 외부적 시점을 확보했을 때. 이처럼 시간 속의 세계를 전망의 대상으로 재구축하는 것은 『IMG』에서 “현대의 보는 방법” 또는 “21세기의 창문”으로, 이미지 제작자에게 주어진 “또 다른 돌파구”로, 또는 이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현실을 고쳐 그리려는 어떤 “진실된 허구의 기록”으로 제시된다. 이것이 『BGIMG』에서 해체되고 『AIR』에서 연습되고 『CC』에서 상연된다. 그러나 앞서 나는 『CC』가 완결된 것이 아니라 종결되었다고 썼다. 로그아웃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트위터의 웃기는 계정이 현실 세계의 대통령으로 치환됐을 때, 또는 트위터의 멋있는 계정이 현실 세계의 위험인물로 반전됐을 때. 현실과 가상이 만나는 흐릿한 경계에서 파도를 타던 타임라인의 위태로운 균형이 무너지면서, 기호의 세계가 총체적인 정화의 요구에 직면했을 때.  

하나의 가설을 생각해 보자. 이를테면 CC는 애초에 상자 속에서 배양된 고양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상자에 최적화된 완벽한 식빵 모양으로 자라난다. 그것은 상자 안에서 살기에 적합한 패턴을 도출하고 다시 그에 적합한 상자의 형태를 고안하면서 최적화의 나선을 그린다. 이 나선은 처음에는 아주 크게 돌고 아주 멀리 나아가지만 점점 더 작은 원을 그리고 점점 더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서 최종적으로 어느 한 점에 수렴할 것이다. 그것이 예견된 CC의 죽음이다. 그것은 일종의 특이점인데, 왜냐하면 CC로서는 그 이후를 내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시간 속에서 움직일 필요가 없는 세계가 열리는지, 아니면 시간 속에서 더 이상 움직일 여지가 없는 세계가 열리는지, 그 세계에서 자신이 어떤 형태로 존재할지, 또는 존재하기를 멈출지, CC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CC는 그 지점에 다다르는 것을 피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CC는 상자 안에 꽉 끼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CC는 전력을 다해 서둘러서 죽음의 순간을 향해 던져지는 수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조금 늦게, 상자 안에 든 살짝 무거운 몸체가 되어 여기저기로 배달되었다. 그중 한 세트가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빨간색, 주황색1, 주황색2, 연두색의 포스트잇 21개를 붙이고. 표지의 금박은 벌써 조금 벗겨지기 시작했다. 

원한다면 나는 이 책들에서 시간의 남은 잔향을 거두고 정념을 표백해서 흰 뼈 같은 공간적 배치만 남길 수도 있었다. 그 또한 CC를 보는 한 가지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또 하나의 가설을 생각해 보자. 아마도 CC가 죽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CC』의 등장인물 소개에서 CC는 복제 이후에만 4번 죽었다고 이야기되는데, 이것은 꽤 현실적인 숫자다. 종종 죽음과 전생이 끼어들곤 하는 시간은 연대기 순으로 나열하는 것에 크게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단순히 공간화한다고 구제되지도 않는다. 나는 가끔 뒤뜰에 앉은 미국인처럼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내가 뒤뜰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인데) 내가 쌓아올린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책장은 내 의자를 거의 파노라마처럼 에워싸고 있다. 지하와 지상이 있고, 장벽이 있고, 임시 가설물이 있고, 움직이는 섬들이 있고,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둥들이 있다. 장벽은 세 겹으로 이루어졌고, 가장 깊은 겹에는 내가 이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아주 오래된 것들이 잠자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서울의 한국사가 있고, 가장 낮은 곳에는 2010년대 서울의 사료 또는 기념품들이 있으며, 그 사이에는 창문의 시체들이 산처럼 높이 쌓여 있다. 그것을 거슬러 오르는 경로를 찾을 때까지, CC는 맨 아래층 오른쪽 끝에 위치할 예정이다. 

(*) 2017년 12월 6일, 연세대학교 성암관 3층 갤러리 강의에서.
(**)윤원화 / 시각문화 연구자. 저서로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 『문서는 시간을 재/생산할 수 있는가』, 역서로 『광학적 미디어』, 『기록시스템 1800/190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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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사진: 김경태, 2018
구매처: http://superellipse.net

Wednesday, October 31, 2018

AIR : 비어있는 중심

총 4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CC 프로젝트에서 AIR의 역할은 중심이 사라진 공간에 세워질 새로운 기둥. 그러나 그것은 언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IMG
판형 130*180*35
초판 1쇄 펴냄 2017년 6월 30일
저자 곽형준, 김병조, 김태용, 김효진, 먼데이스튜디오, 선정우, 소린, 송락현, 이윤성, 이진, 정석예, 정현, 천계영, 탁상, 하성호, 황인찬, 레토 라윤 휘얼리만
기획 정현

편집 손영민
디자인 김병조
인쇄 으뜸프로세스
펴낸이 정현
펴낸곳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
출판등록 2012년 8월 3일 제 2012-000267호

본 출판물의 저작권 및 판권은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에 있으며,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법에 의해
무단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Copyright © Superellipse Books. 2017. Printed in Seoul, Korea.
ISBN 979-11-953312-7-7-03680

KRW 60,000

총 네 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CC 프로젝트 중 세 번째 책 『AIR』는 CC 프로젝트의 중심에 세워지는 기둥 역할을 담당한다. 그 내용은 1~4세대 한국 오타쿠의 역사 기록물을 표방하며, 형식적으로 한 권의 책이 네 번 반복되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단순히 개념적으로 대칭하는 수준을 넘어, 읽는 방식과 페이지 넘김 순서까지 정확하게 대칭으로 계획되었다. 즉, 책은 좌에서 우로(A-B). 또한 우에서 좌로(D-C) 읽을 수 있다. 네 번 반복된 콘텐츠가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다. 각각의 책에 사용된 페이지 번호 표기 방식과 폰트는 조금씩 다르고, 디자이너 김병조와 발행인 정현의 서문은 네 번 반복된 책에 나뉘어 연재된다. 따라서 거의 유사해 보이는 중심 구조와 바깥은 계속 변하며 반복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CC의 다른 프로젝트들처럼 『AIR 』역시 130×180×35  밀리미터 라는 정해진 규격에 맞춰 제작되었다. 하지만 『IMG』, 『BGIMG』에서 계획과 제작 방식의 불일치, 제작 현실의 벽이라는 부분이 강조되었다면, 『AIR』는 과연 이것이 현실인지 가상의 제작 이미지인지 헷갈릴 정도의 정교함을 강요받았다. 완벽에 가까운 계획과 실천으로 구축된 실체, 그러나 읽는 이들 그 누구도 알아봐 주지 않는 강박증. 『AIR』가 추구하던 바는 그야말로 “타이포그래피 오타쿠”의 동인지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만화, 애니메이션 오타쿠들의 관심사와는 또 다른 세계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유사하다.

발행인의 서문에 따르면, 『AIR』는 바로 그 현장, 그 시절 중소기업여의도종합전시장의 에어돔(Air Dome) 구조 아래 행사장을 대리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가상 공간을 책으로 재현한다. 글은 그래픽 디자이너 김병조에 의해 거의 장식이 배제된 듯 엄격하게 구성된 레이아웃과 타이포그래피에 의해 담겨지지만, 그러한 법칙의 엄밀함 속에서 각 저자의 참고 문헌, 문장 부호나 주석의 사용, 이미지 레퍼런스의 상이한 특징이 더욱 드러나는 효과를 갖게 된다. 마치 일렬로 배열된 전시 배치도에서는 그저 숫자로만 드러나던 정보가 회장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오색찬란한 캐릭터 입간판으로 뒤덮여 버리는 오타쿠 행사장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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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 외부에는 당연히 수많은 이스터에그가 숨겨져 있다. 그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1) 책의 중심에는 열화된 중소기업여의도종합전시장의 사진이 있다. 한국 오타쿠들에게는 추억의 공간이자 역사적 상징물로서, 이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책을 어린 시절 교과서나 전과를 나누듯 잘라 내면, 중소기업여의도종합전시장의 에어돔 공간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이는 다카하타 이사오의 영화 〈추억은 방울방울〉을 패러디한 『AIR』의 부제, 「기둥 없는 공간은 방울방울」을 의미한다.
2) 『AIR』는 갱지 같은 저가의 회색 종이에 인쇄한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백색 종이에 회색을 덧씌운 것이다. 이런 과정은 책에 삽입된 이미지들의 백색이 드러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디자이너 김병조에 의하면, 회색은 메인 프로젝트인 『CC』와 테마를 연결하기 위해 선택한 것으로, 서울의 공기 상태­―미세먼지로 가득 찬―를 상징하는 색상이다. 또한 콘크리트 블록처럼 보이는 외관은 에어돔과 대비되는 서울의 콘크리트 건축물을 상징하기도 한다. 
3) AIR의 회색은 컬러 인쇄이다. 따라서 올컬러로 제작된 『AIR』가 CC 프로젝트 책 네 권 중 제작비 대비 페이지 단가가 가장 높다.
4) 모든 이미지와 폰트들은 있는 그대로 사용되지 않고 디자이너 김병조에 의해 변형되었다. 디자이너 김병조가 공개한 동영상에서 그 제작 과정을 확인해 볼 수 있다.(*)
5) 책의 표지를 벗기면 책등에 숨겨진 메시지가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안노 히데아키가 자신의 고향 초등학생들에게 수업했던 내용의 일부를 영문 번역한 것이다.다.
"But in what we call "real world," things aren't so black and white…"(**) 

(*) https://youtu.be/HKh3R66V2TQ
(**) "그러나 우리가 부르는 "진짜세계"는, 단지 흑과 백만 있는게 아니야..."

2021년 12월 12일 AIR의 디자인을 맡았던 김병조 디자이너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전 고인께서 초타원형의 책과 AIR, 그리고 AIR를 활용한 여러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초타원형 대표와 이하 모든 일원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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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사진:김경태, 2018
구매처: http://superellipse.net



Monday, December 5, 2016

IMG / BGIMG : 부분과 허구의 진실

2016년 11월 28일 발행된 『IMG』/『BGIMG』는 초타원형 출판(*)의 두 번째 프로젝트 『CC』의 별책부록이다.

IMG
판형 130*180*35
초판 1쇄 펴냄 2016년 11월 28일
저자 정현
기획 정현
편집 손영민
디자인 배민기
인쇄 인타임
펴낸이 정현
펴낸곳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
출판등록 2012년 8월 3일 제 2012-000267호

본 출판물의 저작권 및 판권은 Superellipse Books
(초타원형)에 있으며,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법에 의해
무단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Copyright © 초타원형. 2016. Printed in Seoul, Korea.
ISBN 979-11-953312-5-3-03600

KRW 60,000

BGIMG
판형 130*180*35
초판 1쇄 펴냄 2016년 11월 28일
사진 EH(김경태)
기획 정현
편집 손영민
디자인 배민기
인쇄 인타임
펴낸이 정현
펴낸곳 Superellipse Books(초타원형)
출판등록 2012년 8월 3일 제 2012-000267호

본 출판물의 저작권 및 판권은 Superellipse Books(초타원형)에 있으며,
이 책에 실린 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법에 의해
무단 복제 및 사용을 금합니다.
Copyright © 초타원형. 2016. Printed in Seoul, Korea.
ISBN 979-11-953312-6-0-03660

KRW 60,000

CC 프로젝트는 총 네 권의 책이다. 『IMG』/『BGIMG』는 본 프로젝트의 주축이자 모든 책의 내용을 이어 주는 다리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의미와 양식, 형태와 콘텐츠가 언제든 하나의 좌표축으로 수렴 가능한 21세기 현대, 이미지와 텍스트를 설명하는 『IMG』가 한편에 놓인다. 바로 맞은 편에 예시 도판과 사진 페이지, 그리고 숫자로 이루어진 『BGIMG』가 펼쳐진다. 두 책은 제목과 형식이 거울상을 이룬다. 주체와 세계를 상징하는 거울상의 제목, 뻔한 유광 컬러 아트지와 무광 모조 내지―무광 컬러 표지와 유광 컬러 표지―가 질료와 색상의 거울상이라면, 이미지에 대한 내용임에도 단지 텍스트만 존재하는 공간, 도판을 압도하는 페이지 넘버, 서지 정보와 같은 부가 정보 등 스케일이 역전된 구성은 바로 구조-프로그램의 거울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정현은 그래픽 디자이너 배민기와 함께 새롭게 창조되었다기보다는 이전부터 주어진 것들, 어쩔 수 없이 고안된 것들, 과거와 현재의 양식들이 뒤섞여 혼돈에 빠진 디지털 세계―무시간성, 무질료성, 임의의 형태와 스케일의―를 다시 미래를 위한 좌표와 시간에 가두어 보는 최초의 프레임을 고안한다.

초타원형 출판의 전작 『PBT』에서 이미지를 숫자화된 공간에서 축조해 보려는 설계자의 시선이 엿보인다면, 『IMG』/『BGIMG』에서 드러나는 시선은 질서 있는 배열 위로 반복되는, 오류와 한계가 뒤틀어 버린 현실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것들의 끝없는 나열, 얇은 피막과 같은 것들로 둘러싸인 두터운 공간, 단단하지만 또한 부스러질 정도로 약한 것, 추상적이지만 구체적인 것… 이 모든 것들이 담기는 현실이란 무분별, 무차별하다. 인간의 시선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압도적 세계상에는 단지 일부만을 담아내는 매체와 도구를 통한 관찰자의 시선만 있을 뿐”이라 주장하는 저자의 말처럼, 이미지와 텍스트는 사진과 책과 전자 공간과 같은 매체로 연속 전이되며 필연적으로 진실과 멀어진다. 하지만 현실의 한계를 드러내는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진실”을 담아낼 기회일지도 모른다.

CC 프로젝트는 불연속적으로 반복 배열된 “부분의 진실”이 압축되며 합성된, “허구의 진실”을 다루고 있다. 『IMG』/『BGIMG』는 바로 그 세계를 포착하는 새로운 카메라 렌즈, 혹은 촬영 방식과도 같다. ‘130×180 밀리미터로 설정된 프레임이 겹쳐지면 35 밀리미터의 두께를 가져야 한다.’ 규칙과 숫자들은 불변이며 최종 완성을 약속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축소되고 늘어지거나 압축되며 뒤틀어져 버릴 것이다. 계획은 실현될 수 있을까? 마지막의 최후, 최후의 마지막까지 보존할 수 있는 진실이란 처음 계획 안에서 과연 얼마만큼을 차지할까?

 (*)2012년 설립된 초타원형 출판은 크고 작은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독립출판사이다. 2014년 출간한 『PBT』를 시작으로, 특정 지역 건물을 다룬 『HLVT』, 뒤섞인 가짜(진짜?) 맥락 속 건물 이야기 『CC』, 당대 건축 이미지 재현 신방법론을 다룰 『ISBN』을 3년에 걸쳐 내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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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사진: 김경태, 2018
구매처: http://superellipse.net

Thursday, July 7, 2016

PBT PBT : 테스트 테스트

특별한 띠지와 함께 발매된 PBT 2쇄

2014년 12월 28일에 발간되어 디자이너, 예술가 들의 입소문을 타고 독립출판물 분야에서 회자되었던 초타원형 출판(*)의 『PBT(포토샵 브러시 텍스트)』가 2쇄를 발행하게 되었다. 첫 출간 때와 같이 소셜 펀딩 서비스 “텀블벅”을 통해 2쇄의 제작비를 후원받았으며, 1쇄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오탈자와 이미지를 바로잡고 일부 다이어그램을 수정하여 제작했다. 독립출판물로서도, 소셜펀딩으로서도 같은 책을 재생산하고, 재후원받는 일은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저자는 완전히 똑같은 책으로 후원받는 대신, 2쇄 후원자들을 위한 특별한 띠지를 약속했다. 그것은 1쇄의 후원자이기도 한 윤원화(**)의 『PBT』 소개글이다.
띠지는 1쇄와 똑같은 책의 표지 위로 차례에도 언급되지 않은 -2 챕터 에세이 「한 후원자의 회신」을 담고 있다. 회신 첫 문장에서 윤원화는 『PBT』란 과연 무엇에 관한 책인지 질문한다. 그리고 차곡차곡 쌓여 가는 『PBT』의 페이지들이 만든 3차원 형태, 책의 형상을 마치 건축물을 분석하듯 챕터와 인용구를 넘나들며 해석한다. 그는 『PBT』의 세계를 위태롭고 어지러운 시대를 돌파해 보려는 젊은 건축가의 필연적인 선택으로 바라본다. 『PBT』의 저자가 어지럽게 놓인 미로/미궁을 공략하기 위해 설정된 주인공이라면, 띠지는 그런 주인공의 궤적을 좇아 세계를 조각이불처럼 이어 붙여 바라보는 공략본인 셈이다. 실제 게임 공략본처럼, 에세이는 본체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옆에 놓일 수 있다. 다소 구차한 광고 문구나 장식적 효과를 위한 것으로만 여겨졌던 띠지라는 형식이 새로운 글이 놓일 공간으로 활용된다. 책의 겉표지와 미묘하게 다른 색, 투명성, 길이의 띠지는 웹 브라우저나 대형 스마트폰, 타블렛으로 읽는 디지털 문서의 현실화이다. 스크롤처럼 연속적이며 코팅되어 본연의 재질감을 상실하고 매끄러워진 동시에, 앞 뒷면이 존재하는 얇은 스킨이다. 또한 그 자체로 책과 비슷한 형태로 세워 볼 수 있는, 불안하고 유연한 구조물이기도 하다.

『PBT』의 디자인을 맡았던 디자이너 김동휘는 이번 2쇄에서 1쇄와는 전혀 다른 레이어를 입히기 위해 새로 추가된 에세이를 90도 회전한 방향으로 배열하여 기존 책을 감싸는 방법을 택한다. 띠지 표면 위에서 방향을 상실한 글씨는 읽기 위한 본문이라기보다는 미려한 텍스처이다. 그 결과 새로운 텍스처가 입혀진 2쇄는 세로쓰기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은 유지한 채, 가로쓰기에 최적화된 한글 폰트의 표정을 그대로 간직한 기묘한 얼굴이 되었다. 1쇄가 마치 건물의 입면과 같은 도안으로 책에서 느껴지는 스케일을 숨기려 했다면, 2쇄는 『PBT』 설명 글을 이용해 크기와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 책등의 제목과 뒷면의 바코드는 흐르는 패턴 위에 이질적으로 삽입되어 있어, 레이어가 과거 『PBT』 1쇄의 위에 얹혀져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PBT』 1쇄의 흔적들은 오래된 지층 속에 갇혀 시대를 알려 주는 화석보다는, 끊임없이 흐르는 물에서 채취한 사금처럼 순간적인 현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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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설립된 초타원형 출판은 크고 작은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독립출판사이다. 2014년 출간한 『PBT』를 시작으로, 특정 지역 건물을 다룬 『HLVT』, 뒤섞인 가짜(진짜?) 맥락 속 건물 이야기 『CC』, 당대 건축 이미지 재현 신방법론을 다룰 『ISBN』을 3년에 걸쳐 내놓을 예정이다.

(**) 저술가, 번역가. 『청취의 과거』, 『광학적 미디어』, 『기록 시스템 1800/1900』 등을 번역했다. 2012년부터 미술과 시각문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여 『퍼블릭 아트』, 『아트인컬처』, 『도미노』 등의 잡지에 기고하고 있다. 2014년 일민미술관에서 아카이브 전시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를 공동 기획했다. 2016년 워크룸 프레스에서 첫 저서인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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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사진: 김경태, 2018
포스팅이미지: 정현, 2016

Friday, January 30, 2015

PBT : 테스트

디지털 환경과 도구에 대한 초타원형 출판의 첫번째 책 PBT.

PBT
(포토샵 브러시 텍스트)
출판일 2014년 12월 28일
초타원형 출판 엮음
글 정 현
사진 <목록 모형(들), 2014> 김경태
에세이 「회신」 김건호
디자인 김동휘
다이어그램 디자인 판상형
편집 손영민
판형 128 * 188
값 25,000원
페이지 수 244쪽
분야 예술
발행처 초타원형 출판
홈페이지 http://superellipse.net
전자우편 superellipse.books@gmail.com
Copyright Ⓒ초타원형, 2014. Printed in Seoul, Korea.
ISBN 979-11-953312-1-5 03650

“『포토샵 브러시 텍스트』는 2013년부터 1년간 인터넷에서 공유된 포토샵용 디지털 브러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포토샵이란 수백 명의 수학자와 그래픽 디자이너, 개발자가 함께 모여 만들어 낸, 지난 세기말 처음 선보인 이래로 창작자들에게 가장 널리 쓰이는 디지털 이미지 편집도구입니다. 이 책은 포토샵 프로그램 내부의 많은 도구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인, 브러시 도구에 대해서만 다룹니다. (…) 이 책을 구입해 볼 정도의 독자라면 디지털 저작도구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숙지한 상태일 것입니다. 혹은 그와는 정반대 편에서, 책을 읽고 나서도 도구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분들도 계시겠지요. 다소 혼잡한 구성이라 해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분과, 그렇지 못한 분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들께 이 책은 너무 일반적이고 쉽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설명은 과감히 건너뛰기도 하며, 낯선 단어가 난무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생소한 표현과 불친절해 보이는 태도가 책의 이해를 방해하는 장애물이기보다는 볼 때마다 흥미를 자아내는 낯선 풍경처럼 보이기를 바랍니다.”
— 서문 중에서.

PBT는 포토샵 브러시 텍스트의 약자이다. 이 책은 지난 세기 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어 온 이미지 편집도구인 포토샵의 도구들 중 널리 알려지지 않은 “브러시 도구”를 다룬다. 『PBT』 출간 전 1년간 인터넷을 통해 배포한 디지털 브러시는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건축가, 사진가 등 전문가들의 저작도구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디지털 도구 제작 방법과 출력 매체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깊이 다루려 했고, 소셜 펀딩 서비스 텀블벅을 통해 208명에게 후원받아 『PBT』를 제작했다.

디지털 브러시는 단순히 아날로그 도구 효과를 재현한다는 목적을 넘어 디지털 환경 내부의 인터페이스 역할과 출력 메커니즘을 동시에 담당한다. 저자는 브러시를 비롯해 픽셀, 레이어, 출력 등 디지털 도구들의 기본 원리, 아날로그 저작도구와 디지털 도구의 차이점 등을 개인적인 경험과 감각의 예를 들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현대미술 전시장의 조각이나 회화 작품을 건축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방법, 벡터와 비트맵을 넘나드는 다양한 이미지는 디지털 세계의 여러 개념과 의미 들을 축조해 나간다.

브러시 패턴이 화면에서 스트로크와 면, 최종 출력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마치 자연과 그에 대응하는 건축물의 설계와도 같으며, 이를 기존 기법서 형식으로 보여 주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발행인은, 비슷한 시점으로 작성된 건축가의 글, 사진가의 사진 들을 “잇고 쌓아서 만들려” 했다. 이러한 의도는 책의 형태뿐만 아니라 책의 배경에 놓일 사은품(후원자들을 위해 별도로 제작된 두 권의 소책자, 포스터, 토트백 등) 구성 방식에까지 반영되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김동휘의 본문 디자인과 책의 만듦새도 주목할 만하다. 텍스트는 책 앞날개에 적힌 목차를 시작으로 날개 안쪽 페이지부터 과감하게 배치되어 마치 질주를 시작하는 듯하다. 본문에서 건축가 정현, 건축가 김건호 등으로 글의 화자가 변할 때마다 글자 크기와 기울기 등 표정을 달리하고, 사이사이 판상형이 벡터로 그린 다이어그램들이 삽입되어 있다. 본문 일부 단어들은 이 빠진 벽돌처럼 은별색으로 처리되어 특정 각도에서 회색으로 보이거나 잘 읽히지 않는데, 이는 이른바 용어 정리 페이지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하이퍼링크다. 하지만 정작 용어 정리 장에 이르러서는 본문과 페이지 번호마저 모두 은색으로 표기되어 책이라는 물질이 가진 고유의 한계와 특성(시선의 좌표축을 바꿀 때마다 드러나는 물질의 현상학적 효과)을 더욱 강조한다.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는, 혹은 모두 반사해 버리는 텍스트 페이지의 뒤를 곧바로 잇는 것은 언뜻 느닷없이 보이는 건축 사진가 김경태의 사진들―알루미늄 호일로 상자를 감싼 작업으로 시작하는 이미지들―이다. 디지털 작품을 출력하여 다시 디지털로 포섭한 열다섯 점의 사진 이후에야 디지털 브러시를 설명하는 본문의 테스트 도판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서로 다른 해상도와 확대 축소 이미지로 패치워크된 이미지 페이지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으며, 이미지들은 본문과 정확히 같은 페이지 수만큼 이어진다. 244페이지의 디지털 세계 여행은 익명, 무명, 온라인 아이덴티티를 기리는 이름들을 책의 뒷날개에 새기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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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타원형 출판에 대해

2012년 설립된 초타원형 출판은 크고 작은 사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독립출판사이다. 2014년 출간한 『PBT』를 시작으로, 특정 지역 건물을 다룬 『HLVT』, 뒤섞인 가짜(진짜?) 맥락 속 건물 이야기 『CC』, 당대 건축 이미지 재현 신방법론을 다룰 『ISBN』을 3년에 걸쳐 내놓을 예정이다.

PBT
(photoshop Brush Text)
Published on Dec. 28, 2014
Text Hyun Chung
Photo “M/F(models)” Kyoungtae Kim
Essay “reply” Gunho Kim
Editor Youngmin Son
Image Planstadt
Design Donghui Kim
Diagram Design Planstadt
Publisher Hyun Chung
Published by Superellipse
Registration No. 2012-000267 Aug. 3, 2012
E-mail superellipse.books@gmail.com
Homepage http://superellipse.net

All materials in this book, including text, graphics, and images, are copyrighted by Superellipse.
All rights reserved. Reproduction and retransmission is prohibited without prior written permission.

Copytight Ⓒ초타원형, 2014. Printed in Seoul, Korea.
ISBN 979-11-953312-1-5 03650
Price KRW 25,000

(*) 포스팅사진: 김경태, 2014
(**) 포스팅이미지: 정현, 2014

Saturday, November 1, 2014

1505–2022 : Cathédrale de Lausanne

스위스 로잔 성당의 표면, 숫자를 찍은 건축 사진가 김경태의 사진집, 1505 - 2022 Cathédrale de Lausanne.
로잔성당이 지어진 해는 1170년, 이름을 알 수 없는 벽돌공의 작업에서 출발하였다. 1215년까지 또 다른 무명의 벽돌공이 마무리를 짓고, 이후 Jean Cotereel에 이르러서야 포치와 2개의 탑을 비롯한 대부분이 완성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그의 이름이 성당의 건축가로 등록되어있다.) Villard de Honnecourt 의 실내 유리장식, 그리고 종교개혁은 성당의 장식과 형태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1505년이 되어서야 로잔 성당은 우리가 알아 볼 형태를 띄게 된다. 1536년 이래로 대대적인 보수/개조 (reform)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공사는 19세기 말엽 Viollet-le-Duc (*) 가 지휘한 것으로, 고전 양식에 눈에 띄는 확장이 이루어졌다. 가장 최근의 공사는 1968년 북부타워 부분이다. 서북쪽의 탑과 앱시스까지 마무리 짓는다면, 2022 년에 최종 보수가 마무리 될 것으로 예상한다.

제목의 (1505-2022) 숫자는 예의 역사적 사실과는 맥락없이 짝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505년이 어떤 시작의 날짜가 될 이유도 없고 (그것은 오히려 초기 형태의 완성 날짜였다), 2022년은 단지 보수 공사의 예정날짜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맥락없는 시점의 포착이야 말로 이 시간을 초월한 성당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지 모른다. 역사란 누군가 임의로 나누어 본 큰 사진 이미지와도 같아서, 실제로는 잘려나간 프레임 바깥에 끝 없는 연속상황이 존재한다. 다만 어딘가를 지정했기 때문에 우리는 앞뒤로 펼쳐진 더 큰 세계 전체를 -시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상상해볼 수도 있는 것이다.

사진가는 눈에 띄는 건축적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담고 있지 않다. 로잔 성당에는 무명씨의 벽돌쌓기에서 로마네스크, 고딕양식 까지 각종 양식의 베리에이션이 건축을 따라 펼쳐져 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4개의 숫자들, 혹은 문자나 장인이 남겨놓은 흔적들 뿐이다. 성당 개조/보수 공사가 진행될 때 마다, 벽돌과 건물의 일부에는 숫자와 년도가 새겨진다.  사진가는 F.S 1886  R 1877 과 같이 알파벳과 숫자로 이뤄진 것에서 부터 빗금기호, 1957, 1960 과 같은 그냥 숫자들, 개조와 보수를 거치며 삽입된 새로운 벽돌, 헌 벽돌, 마모된 표면을 주목했고, 포착해 내었다. 운이 좋다면, 그것들을 중심으로 펼쳐져있는 질료의 조합, 양식의 비균질성들을 발견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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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본 이미지들이 먼저 실렸던 "2015 타이포 잔치 프리비엔날레 뉴스레터"의 디자이너 신동혁, 신해옥 듀오가 맡았다.  A4 사이즈 52페이지의 책은 중철제본되어 두꺼운 표지로 마무리 되어있다. 그들은 건축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axonometric view(**) 에서 책을 디자인 하려 한 것 같다. 표지는 성당 벽면의 암영부이고, 표지의 날개는 앞쪽 하나만 있는데, 이것을 펼치면 본래 벽의 반대면인, 명부가 나타난다. 그 바로 뒤를 잇는 첫장은 목차나 제목이 아닌, 표지이미지 암부의 연장선이 놓인다. (fig.1) 이런 의도는 현실이 아닌, 개념적인 건축 시점에서 더 확연히 드러나는 효과이다. 책 뒷면엔 유일한 텍스트(***)가 있다. 본문 내지에는 어떠한 설명도 없으며, 단지 크고 작은 사진들이 교차로 나타날 뿐이다. 사진 이미지의 배열은 줌인 Zoom in 된 사진이 화면 전체를 채우고, 줌 아웃 Zoom out 된 사진이 작게 놓이는 무척이나 단순한 구조이다.

개념적으로는 다이어그램처럼 간결하지만, 제작에 이르러 이런 요소들은 어딘가 다르고 모자란 것들이 접붙여진다. 책 등 글씨 일부가 살짝 드러난 표지(fig.2), 날개의 비대칭성, 작게 들어간 사진들의 개별 크기가 그렇다. 이 작은 줌 아웃 사진들은 어느 것 하나 똑같은 크기로 재단되어 있지도 않다. 그 비례와 위치도 임의 (거의 사진가가 마구잡이로 잘라낸 듯한) 이다. 책의 각 장들은 코팅된 얇은 종이와 무광의 두꺼운 종이가 교차되어 쌓여있고, 이따금씩 단면 인쇄된 페이지가 양면 페이지 사이에 끼어있는 탓에 균일한 속도로 감상하기 어렵다. 어린시절 초등학생들이 두 손바닥을 겹쳐 시신을 만지는 촉감을 느껴보려는 듯한 차가운 기괴함, 그런 유머가 서려있다.

아마도 그들이 제작비 절감을 위해 선택했었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중철제본도, 애초에 책의 옆면이 거칠어질 것을 미리 알고서, 도리어 그 차이를 과도하게 드러내기위한 당연한 선택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거의 디자인되어 있지 않은 듯한, 종이를 한번 접는 정도의 단순한 개념의 틀 안에서, 차이가 나는 모든 것들은 서서히 아귀가 맞아 들어간다.

fig.1


fig.2
(*) Eugène Viollet-le-Duc (1814-1879)는 당대 저명한 건축가로 중세 건축 재건에 힘을 쏟았다. 그는 고딕 리바이벌에 큰 감화를 받았다. 고딕의 표현양식보다는, 그것을 이룩하기위한 구조에 더 신경을 썼으며, 그런 그의 이상은 때때로 시간을 초월하는 감각마저 보여준다. 그는 에펠을 도와 자유의 여신상의 내측 구조를 디자인하기도 하였다.

(**)axonometric view 는 투시가 제거된,  직교 투영법이다. 현실감과 오히려 거리를 두는 이런 투시법은, 좌표축을 기준으로 한 각 면이 일시적으로 고정된 상태이며, 그렇기 때문에 제작자는 상하좌우로 패닝해도 왜곡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 좌표의 장점은 재현이 아닌 구축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제작자는 이 유사 3차원 이미지를 독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고 원작자의 개념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된다. 현실의 모방과는 애초에 거리를 두었으므로 질료와 내부 콘텐츠는 지속적으로 치환이 가능하다.

(***) 짧은 텍스트는 성당에 대한 위키피디아식 설명도 없으며, 형성과 변화, 보존과 구축을 상징하는 건물과, 아이러닉한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는 숫자, 그것에 관심있는 사진가를 소개한다.

Thursday, September 11, 2014

Märkli : 기율

ETH의 교수 Peter Märkli 의 10년간의 교육기록.

2012년 5월 11일 토요쵸역(東陽町駅) 갤러리 A4 에서는 Peter Märkli (페토르 멜클리)교수의 Eidgenössische Technische Hochschule Zürich (ETH) 스튜디오 작업을 모은  '세계 건축 학교 전 ETH 스위스 공과 대학 건축 교육 -Peter Markli 스튜디오에서' 전시를 개최하였다. 이에 맞춰 출판 된 본 카탈로그는 02 년부터 12 년까지의 멜클리 스튜디오 10년간의 활동과 그의 작품 7개, 그리고 멜클리의 인터뷰를 수록하고있다.

세계 건축 흐름은 21세기 10년을 지나자 빠르게 아시아(시장)에서 다시 서구-유럽(기율)으로 흘러가고 있다. 일본은 이 변화를 어느누구보다도 빨리 실감했고, 받아들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11년의 토호쿠 지진 이후 일본 건축계의 다소 의기소침한 행보와도 관계가 있다.) 서구 건축에서도 기본을 중시하는 -그러면서 조금씩 뒤트는- 스위스 건축가들이 다시 주목 받던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기율과 결과물이 혁혁한) 일본건축가들을 일본인들 보다 훨씬 더 깊이 연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Valerio Olgiati가 언급한 시노하라 카즈오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보자.) 이런 현상은 일본인에게 신선한 충격이면서도, 대체 어떤 이유가 뒤에 있을 지 궁금했을 것이다.  토호쿠 지진이 발발한 지 1년 후에 기획되고 열린 본 전시는, 스위스 건축 기반인 건축 "교육"을 향해있고, ETH의 교수진들중에서도 페토르 멜클리의 스튜디오 작업들을 주목한다.

책은 그의 두 제자 Chantal Imoberdorf와 아틀리에 완 (Bow-Wow)의 카이지마 모모요의 서문으로 시작한다. (카이지마는 96-97년 ETH에 교환학생신분으로 멜클리의 스튜디오를 경험한 바 있다.) 멜클리는 다소 나이브해 보일정도로 건축에 있어서의 정신과 생동감, 표정-표현과 같은 에너지를 강조하지만, 그 결과는 엄격한 건축"물"로 향하고 있다. 두 서문은 학생으로서 바라본 스승 멜클리의 성품외에도, 취리히라는 도시가 지닌 집합주택군의 특징과 로마네스크양식등 서구 건축 본연의 깊은 역사를 기반으로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 교육과정에 깊이 감화되었음을 회고한다.

스튜디오는 취리히, 세인트 갈렌, Vendig의 대운하를 거치며 고층 건물, 스포츠센터, 레스토랑의 건물을 다루다가도 곧이어 서구 고전건축의 아이디어(idee)와 게슈탈트(gestalt) 론으로 이어진다. 또 티레니아 해역의 외딴섬 Giannutry 섬 속의 작은 주택, 팔라디오의 주택들, 도회지역 건축형상 축조술의 탐구, 베네치아의 익스텐션, 페사로의 빌라 임페리얼의 입구건물등 리서치와 답사를 통한 것, 또 도시 조닝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  게슈탈트와 표현, 도시와 주택등 도시에 대한 맥락을 건든다.

과제 결과는 건물 실존을 짐작케하는 건축도면과 모델이미지, 지도 레벨에서의 피규어드로잉(figure drawing)들로 구성되었다. (다이어그램이나 학생 자기 주장이 드러난 글은 없다.) 뒤이어 곧바로 멜클리의 인터뷰가 나오고 그의 근작인 노바티스 캠퍼스, 컨벤션 센터, 주거 경쟁부문 출품작, 집합주택, 와이너리, Synthes 의 새 오피스가 학생작품들과 동일한 형식으로 배열되며 마무리된다.

스위스 건축교육은 보수적이라는 표현이 꽤 적절하다. 그러나 치밀한 구성과 제약조건하에서 완성된 학생작들은 디시플린, 그 자체로 무척 인상적이다. 멜클리 스튜디오 과제들에서 기존 건축 군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스위스 건축 교육의 중심철학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멜클리 스튜디오의 특징은 도시적, 건축적 맥락과 딱딱한 제약 속에서 학생들 개인의 원초적인 공간의 이미지, 그 상상-형상이 힘을 잃지 않는 데에 있다. 이는 학생작뿐 아니라 멜클리 본인의 근작 섹션에서도 확인가능하다. 멜클리 자신 또한 내면에 깊이 각인된 건축 혼을 꺼뜨리지 않고, 새로움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제간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과 영향은 책 곳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고전건축과 무명씨 건축에의 탐구, 재료에 대한 깊은 관심과 그 표현방식(텍토닉)은 멜클리의 전매특허이며 그의 드로잉에서 부터 여지없이 드러난다. - 마치어린아이 같은 스케치와 가소성(plasticity)이 느껴지는 -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컴퓨터 보다는 손으로 그린, 건축 재현에 있어서 드로잉은 드로잉. 그 자체로서 물질성을 앞세운 작업방식을 고수한다. 평면계획상에서도 - 언뜻 불완전에 가까운 -  틀에 맞춰지지 않는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이는 탄탄한 건물로 (재)구축된다. 멜클리의 근작은 포맷 그대로 학생작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학생작들을 무명씨의 건축을 바라보듯 하는 건 아닐까?) 단순 형태 안에서 끝없이 컨벤션을 부수는 복잡한 디테일들은 이대로 안주하지 않는 스승의 태도를 보여준다.

책은 독일어-일본어의 2개 국어로 되어있다. 그래서 국제적인 자료로서 보다는 일본 내수용 (스위스 건축교육) 연구서처럼 느껴진다. 디자인이나 판형은 ETH 의 Year book 형식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다만 분홍빛 색상이 내부 이미지와 페이지 공간을 분리시키거나 (스튜디오 작업섹션)또는 흰페이지에 분홍배경의 이미지로 합치하는 (멜클리 본인의 작업) 역할을 하는 것은 특이한 점이다.

Tuesday, June 10, 2014

Simon Ungers : 건축가의 죽음

Simon Ungers의 작업을 담은 GG Portfolio 시리즈.

건축가 OMU (Oswald Mathias Ungers) 가 Cornell 의 건축과 총장으로 있을 당시 동 대학을 졸업한 그의 아들 Simon Ungers는, New York 과 Cologne 을 기반으로 건축과 미술작업을 동시에 해왔다. 몇 개 컴피티션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고 건축 뿐아니라 녹슨 철 (corten steel) 조각, 조명 설치작업등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Tom Kinslow와 함께 만든 T-house 는 그의 철 조각을 실제 건물화해낸 대표작이라 부를 만할 수 있을 것이다.  Cornell 대학이 있는 Ithaca 시에 머물던 시절,  싸구려 시멘트 벽돌로 인상적인 Cube hourse를 만들었고, 또 근처 Winery의 실내장식을 만들기도 했다. (*)  그가 유대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공동 우승자이기도 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는 Harvard 대학에서 가르쳤고 Syracuse, Cornell, Rensselaer 기술대학등에서 교육자로서의 위치도 다져갔다.

남 부러울 것 없어보였던 그가 부인인 Janet O'hare를 남겨두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것은 2006년 3월 6일의 일이다. 57년 5월 8일에 태어났으니 만으로 49세의 나이였다. 건축가에게는 무척 젊은 나이이기에 주변의 충격은 무척 컸다.  그가 오랜 기간 건강악화로 고생중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는 비밀에 쌓여있다. 어쩌면 모두 그 순간을 기억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그의 모습에 대해 코넬 대학의 교수들(***)은 웃으며 그의 학업과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고 전한다.
"그는 늘 선생들의 의견에 의문했다. 자기 작업에 대해 이유 묻는 것에 맞서 끝까지 제 주장을 관철했다. 첫 학기 부터 그의 작업은 당시 유행하는 양식들과는 무척 달랐다. 이에 조교가, '마치 러시아 구조주의자의 작업같군.' 이란 말을 했을 때도 그는 그 말이  시대착오적인 태도를 비아냥거린다 받아들이기 보다도 '그것 참 멋있는 말이로군.' 하는 반응을 보였다. (****)"
그의 작품들이 갖는 기념비적 스케일, 순수한 기하, 불가능해보이는 구조 (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 문제 많은 질료(콜텐 스틸이나 매우 싼 재질들)등은 어느 하나 타협이라는 것을 찾기 어렵다. 마치 콘템포러리 건축의 이미지 콜렉션 유행에서 자주보이는 위 요소들은 그의 생전 유행하던 양식을 생각하면 조금 고개를 갸웃거릴 만 하다.

그는 건축이 그 자체로 말을 하길 원했고, 실천을 미술관의 전시, 본인의 건축 그 자체로 동시에 보여주길 원했다. 베를린에서 치뤄진 몇 차례 그의 미술 전시는  거대한 I 빔,  떠있는 벽, 가로지르는 들보,  9 X 9 X 9 사이즈의 큐브와 긴 막대형의 조명등으로 관객의 시선을 가리는 공간 연속성의 장애"물"로서 일종의 가상 건물 실험이었다.  관측자의 시선에 따라 형태는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보다는 은근한, 형태 자체에 내제된 (컴포넌트들의) 맥락에 의해 이따금 사라지거나 재위치하며 완성되어간다.  마치 미니멀리즘 조각 전시처럼,  순수한 형태주의와 그것을 바라보는 시점에 대한 갈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책이 출판된 후의 작품으로서 죽기 직전, 그는 일련의 코르텐 조각의 연장선으로 보이는 코르텐 건물 연작, Heavy Metal 을 선보인다. (*****)  50 x 50 미터로 짜여진 삼각, 사각, 원기둥의 순수한 형태들은 마치 그것이 놓일 곳이 도심이건 자연이건 아무 상관도 않은체 일관된 양식의 담담한 렌더링으로 표현되었다. 완벽한 상징도, 또한 상징이 파편화된 형상도 아니다.  마치 제 자신의 죽음을 조용히 준비한 작업처럼 나란히 어떤 연극처럼 혹은 장례 묘비들처럼 가로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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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ig Owens 는 알레고리(allegoriy)를 느슨해진 체 거의 폐허화된 미적전통을 붙잡는 것에 비유했었다. 또 Walter Benjamin은 알레고리를 독일 바로크 비애극에서 벌어지는, 상징 - 권위와 역사인식에 입각한 일관된 방식으로 사용되는 - 과 거리두는 미적행위라 말했다. 알레고리란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거부하지만 동시에 그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 다만 한 때를 드러내며 또 이전 상태로 되돌려놓을 뿐이다.

Simon Ungers 의 순수한 형태는 - 마치 Ledoux나 Le Corbusier로 이어지는 건축가의 순수주의를 연상케한다.  - 비록 상징적(iconic)이라 쓰여진 카테고리에 놓일테지만, 동시에 공간상황에서 Simon의 형태는 알레고리적으로 개입한다. 주변부 맥락에 맞서는 순수한 형태는 제 자신을 자연스레 병치한다. 여기 당대의 많은 건축가들이 연출한 아이러니나 노스텔지어는 없다. 오히려 과거의 기억들을 숭배하는 동시에 정복해내는, "기억하는 정신"만이 남는다.

이는 아도르노 (Adorno) 의 Minima Moralia - 현대 미적"행위"에의 가능성에 대한 주장 - 보다 더 신랄한 상황을 드러낸다. 아도르노는 말한다.
"아름다움이나 위로는 더 이상 없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공포를 직시하고 인내하며, 그 '부정성'에 대한 단호한 의식 속에서 - 단지 무엇이 더 좋은가하는, 그 가능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선만을 빼고서. "
어떤 책임의식없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 상실과 파멸을 그대로 '트레이스' 하며 직시한다. 그의 건축은 상상과 실제의 공간 사이에서 부유하며 우울한 매력을 채워나간다.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순수하고 또 우아한 작업을 "아니오" 소리치며 밀어넣고 있다.

(*) 와인 저장고안에 들어가는 작은 집. 즉 집안의 집이었다. 이는 그의 아버지 OMU의 영향이 드러난다.
(**) 이후 재투표에서 그의 작품은 선정되지 못했고, 그 당시 선정된 작업마저 무산되어 새로운 경쟁심사가 열렸고, 거기서 Peter Eisenman의 안이 당선된다.
(***) 그가 재직중이던 시절 교수진은 그와 같이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거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 러시아 구조주의에 대한 일면식이 없던 그는 이후 도서관에서 발견한 구조주의작업들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고 전해진다.
(*****) 지어지지 못한 이 상상의 건물들의 도면과 모델들은 50미터 안에 정확히 들어가는 "고요한 건축" 과 비정형으로서 불가능해 보이는 구조를 뽐내는 "말하는 건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SF MOMA 콜렉션에 수록되어 있다. 링크는 이쪽.

Friday, April 25, 2014

KAZUO SHINOHARA : 잡지

2014년 봄, JA는 시노하라 카즈오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망한다.


책 전반적으로 선수를 뺐겨 망연자실해 있는 분위기를 감출 수 없다. 이미 시노하라 카즈오의 작품은 예전 이 블로그를 통해 리뷰했던 Gustavo Gilli의 잡지에서 일본 건축가들이 보아도 놀랄 정도로 깊이있게 다뤘던 적이 있었다.  그 점에서 이번 이슈는 어느정도 동어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서구에서 최근들어 자주 거론하는 시노하라 카즈오에 대한 이야기를 차일 피일 미룰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서문의 오쿠야마 신이치의 글(*)도 2G의 이야기를 우선 언급하고 있으며, 평소 양의 2배에 달하는 굵기나 이미지, 프로젝트의 양도 잡지 2G를 몹시 의식한 꼴이다.

어쨌든 시노하라 카즈오는 일본 건축가이기에 일본으로선  2G에서는 다루지 못했던(**) 여러가지 모습을 덧 붙여 전체적으로 조망하려 한 것으로 뵌다. 서문은 이미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들에 덧 붙여, 시노하라 작품의 제 1-2-3 양식으로 이어지는 타임라인 다이어그램을 페이지 하단에 구성한다. 또한 비 주류 급부에 있는 건축가가 어떻게 "잡지"라는 미디어를 적극 활용했는지 언급한다.

평소 JA답지 않게 콘텐츠 양에 욕심을 부려 시노하라 카즈오의 모든 작품들을 2G보다 훨씬 적은 양의 페이지에 모두 실었다. 그러다보니 프로젝트 하나 당 한 페이지에서 두 페이지 정도, 큰 사진에 간단한 도면과 설명을 여기저기 흩뿌린 다소 실망스러운 구성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러모로 접하기 어려웠던 그의 제 3양식, 미완 프로젝트의 렌더링과 도면, 예전 잡지에 실은 설명 그대로를 다룬 것은 이 책을 2G와 함께 구매해야 할 이유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2G에 대응하는 부록이나 후기와 같은 인상을 감출 수 없는, 망연자실해 보이는 이유이다.)

시노하라 카즈오는 매스 미디어를 이용해 자신을 홍보하는 스타형 건축가였다기 보다는 은둔형 건축가였다. 하지만 막상 그의 비주류 이미지와는 정 반대로, 당시 출판되던 건축 잡지들에 골고루 꾸준히 자기 작업을 기고하고 있었다. 단순히 기고 수준이 아니라 그는 잡지-퍼블리싱에 무척 집착하는 모습마저 보였는데, 그 이유란 아마도 - 1) 그의 작품들은 일반인이 방문하기엔 어려운 개인소유 주택이기도 하고, 2) 잡지의 사진들을 통해 그려내는 시점이야 말로 건축가가 선택한 건축을 바라보는 방법에 다름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시노하라 카즈오는 출판과 인쇄 미디어를 통해 실제 건축(물)을 능가하는 가상계 좌표를 획득하려 했음이 맞을 것이다. 이른바 허구의(***) 건축. 시노하라는 자신의 주택이 가상의 세계 (잡지 속에서만 존재하는 공간)를 구축하는 씨앗으로서, 또 이를 통해 개개인 욕망을 충족하는 예술-장치임을 거듭 강조한다.  물론 그 정기간행물 속의 가상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다시 높은 수준의 미감과 시점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에게 있어 실제 (actual) 와 허구 (fictional )의 공간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JA의 머릿글을 비롯한 전반적 책의 구성도 그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일부 이해가 간다.  이번호는 머리말을 빼곤, JA를 비롯해 신건축, 주택특집, A+U, GA등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일본내 건축 정기 간행물을 적극 활용한 시노하라 카즈오를 담는 것이 바로 그 목표처럼 보인다. 책 표지의 전면은 그의 요코하마 선박 터미널의 공모전 출품작(****)을, 그리고 후면은 그간 참여한 잡지의 표지들을 모아 실어두었다. 그리고 내지는 모두 잡지에 출판하던 시절 그대로를 (시노하라의 설명글과 함께) 갈무리 했다.

이는 앞서 2G가 시노하라 카즈오라는 인물, 메타볼리즘이라는 거대한 흐름 한켠에 있던 비주류 건축가를 또 다시 잡지를 통해 현대에 훌륭히 부활시킨 것에 대한 일종의 겸손한 답가-기념비같다.


(*) 2G의 서문도 그가 맡았었다.  JA 서문의 제목은, "메타랭귀지의 향방 - 재고 [주택은 예술이다.]"
(**) 2G는 그의 1-2 양식의 주택들만 주로 다루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서문의 오쿠야마 신이치가 시노하라 본인이 언급했던 "현실공간"과 "잡지의 공간," 허구 좌표계를 통해 주택이 사회적 위치를 점유하는 방법론을 불러들인 선택이 옳았다고 보인다. 시노하라의 건축과 건축가 시노하라. 양면을 드러내는 전략이다.
(****) FOA가 최종당선되어 설계를 맡은 바로 그 공모전이다. 만일 시노하라의 공모안이 당선되었다면 일본 건축계 지형은 또 어떻게 변하였을까.

Sunday, April 6, 2014

1994 : Pritzker

Zodiac 12를 통해 바라본 1994년.


최근 1994년의 사회 문화 회상이 무척 열풍이었다. 이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이라면 1994년의 세계-건축계가 어떠하였을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잡지 Zodiac은 Adriano Olivetti의 후원으로 2년마다 발간했던 건축저널이다. (*) Milan 공대 교수인 Guido Canella가 편집을 담당하고 이탈리아 디자이너인 Massimo Vignelli가 디자인을 맡아 당대와 모던을 병치했다.  Zodiac 12는 1994년에 출간되었으며, 당시 사망하여 건축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Manfredo Tafuri (1935 -1994) 를 추모하는 추모문을 시작으로 1979년부터 1994년 까지의 프리츠커 수상자들의 연혁과 작품세계를 있는 그대로 조망한다.

프리츠커 상에는 관심이 많아도 79년부터 94년까지의 프리츠커 수상자들 면면을 자세히 살펴본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수상자들 리스트부터 낯설다. 기억 속에서는 저만치 멀어져 버린 이들도 많다. 추억이라기보다는 이질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1979, Philip Johnson, 미국
1980, Luis Barragán, 멕시코
1981, Sir James Stirling, 영국
1982, Kevin Roche, 미국
1983, Ieoh Ming Pei, 미국
1984, Richard Meier , 미국
1985, Hans Hollein, 오스트리아
1986, Gottfried Böhm, 서독
1987, Kenzō Tange, 일본
1988, Gordon Bunshaft, 미국 / Oscar Niemeyer, 브라질 / 공동수상
1989, Frank Gehry, 캐나다 - 미국
1990, Aldo Rossi, 이탈리아
1991, Robert Venturi, 미국
1992, Álvaro Siza Vieira, 포르투갈
1993, Fumihiko Maki, 일본
1994, Christian de Portzamparc, 프랑스

프리츠커의 국제적 위상이 대단한 요즘에 비하면 어딘지 여러모로 어색하지 않은가? (나는 지금 수상자들의 자격이나 그들 건축물의 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해에 Oscar Niemeyer와 공동 수상한 Gordon Bunshaft의 일화는 더더욱 이상하다. (**)

1994년을 회귀하는 열풍에 이끌려 우연히 꺼내든 건축저널이 타푸리의 죽음을 시작으로 다시 79년부터 94년까지의 회고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라지만 기이하다. 건축의 1994년은 모두가 공감하는 추억의 좌표라기보다는 다시금 되돌이표가 놓인, 응답할 수 없는 상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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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odiac 저널은 1989 - 1999 년 10년간 발간되었으며 21호가 그 마지막이다.
(**) Gordon Bunshaft 는 SOM에 소속된 프로젝트 담당자로 예일 희귀서적 도서관, Lever House 등 혁혁한 모던 타이폴로지를 일구어왔다. 회사를 퇴사한 뒤 그는 프리츠커재단에 직접 익명으로 전화걸어 - 이 후에 자신임을 밝혔지만 - 제 자신을 추천했다. (재단측은 그 어느 누구의 추천도 반드시 받고, 검토한다. 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브라질의 Oscar Niemeyer와 공동수상한다. 그는 역대 수상자 중 가장 짧은 소감을 밝혔다. 소감문은 다음과 같았다.
" 1928년, 나는 MIT 건축대학에 입학했고 건축인생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오늘, 60년뒤, 이렇게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였다. 나에게 훌륭한 상의 영예를 안겨준 프리츠커 가문과 심사의원들께 감사한다. 이는 내 건축인생의 캡스톤 (관석, 피라미드 최상층부에 올리는 돌)이 아닐 수 없다.  소감은 여기까지다." 

Saturday, March 15, 2014

DOMINO : 10 11 12 13 14

도미노가 5호까지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들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독립출판"이라는 흐름이 서서히 가시화되기 (내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는 2009년.) 몇 년 전, 웹에서는  Indexhibit 과 같은 단순한 포트폴리오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그래픽 디자이너와 동 학과 학생들이 자신들의 출력물 - 어쩌면 해외 디자이너 홈페이지의 흉내였을 수도, 어쩌면 클라이언트를 상상하며 작업한 쉐도우 복싱 같은 것이었을 수도, 어쩌면 망해버린 프로젝트의 한풀이 같은 것이었을 수도 - 을 전시하는 유행이 이미 퍼져 있었다.  그것은 소위 컨벤션화 되어버렸던 "학생작품"과는 전혀 다른, 무척이나 신선한 기운이었다. 웹이라는 막강한 레퍼런스 편집-퍼블리싱 툴을 활용하는 신세대들은, 구세대가 순차적으로 밟아야 한다고만 여겼던 어떤 단계를 몇 발자욱 훌쩍 앞서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미 독립출판 행사를 훌륭히 마친 The Book Society 는 2010년, 같은 이름의 서점으로 탄생하였다. 책방 your- mind 도 온라인 책방에 이은 1회 언리미티드 에디션과 동시에 서점을 오픈한 때가 바로 이 해였다.  또한 홍익대학교 한국 디자인 학회 디자인 담론 특별세션으로 제2회 DD포럼 "옆으로 가는 디자인 교육" (이전엔 상상마당) 도 열렸다. 디자인 현장도 아니고 또 학계도 아닌 기묘한 좌표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학회공식행사에서 이야기 나누었고, 당시 관람객으로 앉아있던 나 또한 이 현상의 증인이 될 수 있었다.

2010년은 한국서 아이폰이 출시가 된 첫 해였다. 디자이너들은 미 애플사의 하드웨어 만듦새를 만끽하며 새로운 인터페이스-그래픽에 열광하였고, 전통적인 국내 블로그와 싸이월드에 기반한 게시판형 커뮤니티보다 SNS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트위터를 위시한 SNS는 바야흐로 텍스트 중독자, 언더 밴드 뮤지션, 온라인 유명인사, 인터넷 논객, 예술 비평가, 연예인, 사회 거물들이 뒤섞여 이들의 일상회화가 단지 텍스트만으로 (마치 부서진 책처럼) 렌더링 되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이로써 독립출판이 유통될 최소한의 온-오프라인 인프라, 그리고 객관적인 담론도 가시화 되었으며 파편화된 콘텐츠를 모으고 이어주는 가교도 어느정도 마련되었다 - 고 볼 수 있었다.  이듬해에 나온 비정기 문화잡지 "도미노"는 그러므로 충분히 나올 수 있을 법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언제 그만 나와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예상했을 법 했다.  예의 독립출판은 그 유행 궤적의 끝, 거품이 이미 어느정도 예견되었다.  많은 동인지가 그러하듯, 단발성으로 끝나는 기획이 허다했다. 긴 호흡, 정기 간행물로서의 가능성은 콘텐츠의 꾸준한 확보가 절실했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도미노라는 잡지는 여전히 독립출판이라는 태그를 달고 나오고 있다. 편집 동인과 콘텐츠 제공자들이 서로 묘한 긴장감과 물리적 거리를 두고 공전하며. 서로간의 긴장감을 제어하거나, 혹은 그대로 드러내 버리는 잡지 특유의 형식-형태적 완성은 그래픽 디자이너 김형재의 어깨에 달려있다.

Thursday, March 6, 2014

Katalog : 카탈로그

John Pawson의 건축 모델-카탈로그.

건축가 John Pawson이 건축을 시작한 계기는 나고야의 경영대 영어 강사로 일본에 머물 당시에 본 가구 디자이너 구라마타 시로 (倉俣 史朗) 의 전시회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구라마타가 사용하는 재료와 가구 구조, 그 제작의 완벽함에 깊이 탄복했고, 이듬해 고국으로 돌아가 AA 건축 학교에 등록했다. 1981년도에 스스로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학교를 떠난다. 이때가 그의 나이 만 32살이었다.

80 - 90년대에 이르며 서서히 정점을 향하던 포스트 모던의 흐름 와중에도 John Pawson과 같은 건축가들은 꾸준히 공간의 단순함을 무기로 삼아왔다. 당시 학계와 실무자들 너나 할 것 없이 도시와 경제, 거대 스케일과 압도적인 형태로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소위 저급의 Minimalist 로 치부되기도 했고 한편으론 유행에 역행하는 소수자로서 그 특이성을 인정받기도 (어쩌면 전략적인 선택일지도) 했다. 그와 비슷한 세대들이 건축학교에 있는 기간은 기실 안도 타다오 (安藤 忠雄) 와 같은, 대세에 영합하지 않는 무명의 지역 건축가가 꾸준히 기본에 근거한 작업으로 반짝이고 있을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니 최근 갑작스레 단순한 공간과 수준 높은 시공 퀄리티를 드러내는 중년의 건축가들이 많아진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

책은 작년 (2012) 독일의 뮌헨에서 연 John Pawson 개인전에서 기인한다.  30년에 걸친 개인 작업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전시였지만 그 콘텐츠의 양은 무척이나 제한적이었다. 건축 모델과 사진, 그리고 직접 찍은 풍경이나 건축 사진들에서 고른 대형 프린트가 전부.  흔한 스케치나 다이어그램은 없었다. (**) 그나마도 적은 가짓수를 다시 한번 더 나누어 전시된 모델만을 엮은 위의 책  Katalog, 그리고 전시에도 일부 실렸던 사진에 관한 책 Visual Inventory (Phaidon Press, 2012) (***) 로 나누어 발행되었다 보면 된다.

건축에 대한 수많은 담론이나 이론, 다이어그램과 소통으로 대표되는 유행에 대항하듯, 무심한듯, 잘 정돈된 모델만 따로 담아내었다.  스케일은 1:100, 200 과 같은 평범한 건축 스케일들이고 이따금 실내 공간과 빛 확인을 위한 1:20 의 스케일의 모델사진도 있다. 재료 또한 Foam 이나 Polyester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빛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종이와 나무등이 쓰였다. 검은 배경에 건물과 환경 모델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좌측의 페이지와 우측의 설명 페이지가 전부인 레이아웃은 이것이 마치 수십년 전 건축과 학생 작품집을 연상시킬 정도로 담담하다. 또 너무나도 제련되어 소위 인간적인 재질감을 느끼기 거의 어려운 그의 건축이 모델 스케일과 재료를 통해 새삼 다르게 보일 정도.

저열한 미니멀리즘 건축가라 불리우는 이들과 Pawson을 구분 짓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모델과 디테일은 무척 함축적이지만 설명이 완전히 생략되어있지 않고,  추상적이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온연히 정확히 재단된 재료들은 큰 모델 사진에 이르르면 거의 실제 공간을 방불케하는 존재감마저 준다. 때때로 그에게 영향주었던, 소위 단순한 건축이 무척 큰 시장을 이루고 있는 일본 건축가들의 표현과도 거리감이 들 정도이다. (****) 오브젝트 스케일임에도 실제 건물 만큼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 잘 느껴진다. 세세한 부분 모두를 제어하는 일은 단순함 뒤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엿볼 수 있다.

그의 작업은 보통 흠 없이 제작되고, 표면에 숨겨진 디테일에 감탄하느라 실내 사진만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다. 전시와 그 도록의 구성은 단지 실내 내부나 디테일이 아닌, 건축물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좋은 대조였다.


(*) 물론 John Pawson의 나이는 더 많은 편이지만, 그가 건축을 시작한 나이가 동년배 보다 10년 늦었다는 것을 감안하고 보아야 겠다.

(**) 전시는 큰 판형의 사진과 모델이 사진 작가나 조각가를 연상시킬 정도로 조용히 놓여있었다. 건축 아닌 작업, 스스로가 찍은 이미지를 전시한 것도 처음이었다.

(***)  2만 5천여장의 사진에서 288장을 골라낸 것으로 풍경과 빛, Monumental 한 건물들을 담고있다.

(****) 현대 건축가들에게 모델이란 탐구하고 스케치하는 적극적인 도구이다. 재활용되거나 값싼 재료로 약하게 만들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Friday, February 28, 2014

Robert Venturi : 이미지와 죽음

1925년 생 Robert Venturi는 1931년 생 그의 부인 Denise Scott Brown과 함께 아직 잘 살고있다. 


20세기 건축계 이론을 확립한 가장 주요한 저술가 하나를 뽑으라면 Le Corbusier 를 꼽는데 이견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나, 20세기 후반에 방점을 둔다면 오히려 Robert Venturi와 그의 저서들이 먼저 떠오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전자는 구축술에 기반한 혁명 선언문과 이를 뒷받침 하는 풍부한 결과물들을 남겼다면, 후자는 맥락에 기반한 모호한 글과 방대한 이미지 레퍼런스, 작은 집 몇 채를 비롯한 몇 안되는 건물들이 주요 작품으로 회자된다.

죽기 직전까지 거대한 도시프로젝트를 계획하고 현실화 되는 것을 기다리던 Corbusier에 비교해,  Venturi의 전성기란 저술가로서 활발했던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후반 정도까지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유럽의 Aldo Rossi가 Pritzker 수상을 받은 바로 이듬해(1991년)에 같은 상을 수상한 뒤로 활동은 더더욱 뜸해져서, Yale 이나 GSD에 Visiting Lecture 를 하는 경우들을 제외한다면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 아니 좋게 표현하자면 살아있는 고전과도 같은, 관심밖 존재가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Venturi의 대표저술로 그의 아내인 Denise Scott Brown과 Steven Izenour 와 같이 72년도 공동저작했던 "라스베가스에서의 교훈."(Learning from Las Vegas  (MIT Press, Cambridge MA, 1972, revised 1977.)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는 그의 이론과 건축관을 지나치게 맥락과 상징, 기호에 관한 것으로 오해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라스베가스에서의 교훈" 은 Venturi 일인이 아닌 조력자들과의 깊은 협업으로 탄생한 결과물이었으며 특히, 그의 아내인 Denise Scott Brown의 시점에 상당수 기대고 있었다. (**)

당대를 훌쩍 뛰어넘은 Venturi 일인의 건축적 시선은 오히려 6년 앞서 출판된 그의 첫 번째 저술, "건축의 복합성과 대립성"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The Museum of Modern Art Press, New York 1966.) 에서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이 77년 재출간된 서문에서 "이제 되돌아보니 책의 제목을 "건축적 형태의 복합성과 대립성"(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Form) 으로 하고 싶어지고야 말았다."고 언급했듯,  책은 당대 상황 - 60년대 건축학계의 상황은 무엇보다도 형태가 최우선 과제였다. - 에 맞추어 쓰여졌다. 전통과 현대를 모두 아우르며 건축물의 형태와 구축양식에 대한 관찰자 시점, 태도를 엿 볼 수 있는 것이 흥미롭다. (72년 저술이 상징과 맥락에 촛점을 맞추어 단일 건축물보다는 건물과의 관계를 우선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는 무척 재미있는 변화이다.)

언뜻 모던의 간결함이나 기능주의를 전통주의자 관점에서 비판할 것만 같은 겉보기와는 달리, 둘 모두를 동등한 위치에서 담담히, 지극히 개인적 취향에 기반해 분석하고 있다. 건축이 드러내는 최상단의 표면의 구조- 형태를 통해 간결함과 대비되는 복잡성, 제어가능한 형태들의 집합과 무분별한 컨텐츠를 담을 수 있는 프레임에 대해 동시에 고민한다. 둘 사이에 어떤 위계나 호불호를 가리기 보다는 건축가와 건축을 분리하고, 새로운 관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권말에는 66년까지 그가 작업했던 건축들 (이론의 사례로서)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350개의 아름다운 흑백 건축 이미지 도판들이다.  주요 건축 이론 서적으로 불리우는 그 어떤 서적들 보다도 다양하고 많은, "아름다운 사진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따금 느슨하다고 비판받기도 하는 그의 텍스트를 훌륭히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풍부한 이미지 사용은 모두 출판사인 Museum of Modern Art 의 이미지 아카이브측에서 사용권한을 허가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그가 꺼내든 많은 레퍼런스의 양에 압도되는 감각도 어느 정도 역치점을 넘어서는 시기가 되고나니, Venturi 본인의 Alvar Aalto 라는 건축가에 대한 사랑을 Corbusier 라는 메인스트림 캐릭터에 대치시켜보고 싶었던 단순한 이유가 동기는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 저 둘을 설명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텍스트의 역할이란 사실상 교차 배열된 이미지들의 주석에 불과하다 느껴질 정도이다.

66년 처음 나온 책의 표지(****)가 내용과 달리 현대주의적 형식을 띄고 그 판형이 많은 수의 이미지를 다루는데 쉬워 보이지 않았다면,  77년 재출간된 이 책은 판형도 폰트도 이미지를 더욱 드러내는데 촛점을 맞춘 듯 보인다.  표지도 이미지의 배열과 텍스트의 관계도 사뭇 다르게 재편집되었다.

누구나 한번쯤 듣는 후기-현대의 고전이고, 심지어 저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다들 관심도 없는 시기임에도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따지고 보면 Venturi의 책을 사는 행위란,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검색엔진서 쉬이 구하기 힘든, 저작권 걸린 고급 건축이미지들을 단돈 2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가격으로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니 생각하면 할수록 이 책의 존재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건축레퍼런스를 뒤진다며 텀블러나 핀터레스트에서 매일을 허비하는 "건축 원숭이떼" 들이 마치, 저 '순환 타임라인으로 엮인 고전과 현대주의를  화자의 고정시점으로 정리-도해 해놓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등잔밑에 놔두고 쓰레기 바다에서 허우적대고만 있는 꼴이나 다름없어 뵌다.

(*) 어쩌면 스스로 사형선고를 내린 뒤 살아있는 레퍼런스화 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 Denise Scott Brown은 이후 Pritzker 측에 자신의 이름을 동재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으나 기각되었다.

(***) Venturi 가 쓴 에세이 중 하나에서 그는 고백한다.
"Alvar Aalto 의 작업은 나에겐 현대를 마스터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그의 작업은 예술과 기술적 측면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현대적이며, 풍부한 교육적 가치를 지닌다. 그의 모든 작업은 당대를 넘어 살아숨쉬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방법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그런 다층적 차원과 계층을 지닌 작업의 개별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찌되었건 그 순간의 진실같은 것이다." Venturi 라는 인물의 특성상, 슬며시 농담 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이 에세이를 마무리 짓느라 힘겨울 즈음 알토가 나에게 있어 가장 사랑스러운 점은, 그가 건축에 대한 글을 써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 Pritzker 수상의 소개문 번역.

(****) 66년 초판의 표지는 아래와 같았다.

Monday, September 16, 2013

The Poetics : 시학

Gaston Bachelard 의 "공간의 시학 (1958)" 의 영번역.
Gaston Bachelard (1884. 6. 27 ~ 1962. 10. 16) 의 많은 저서들은 한글 번역본으로 나와있다 한다. 고교시절 우편배달부 일을 하며 독학해 수학학사 자격을 따고, 이후 물리, 화학강사로 일했으며 다시 철학 학사, 중학교 철학교사를 거쳐 철학 교수에 이르는 기이한 경력은 그를 소개할 때 늘 빠지지 않는다. 그는 현상학 (phenomenology)과 과학철학 분야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과학철학이란,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역사적 탐구라기 보다는, 인간이 이야기하는 "과학적 행위" 자체에 대한 의문이다.

이성이란 늘 셀 수 없는 비 이성적인 것들에 둘러 쌓여 있다. 인류의 원초적 경험, 역사적 상황이나 전해내려오는 정서, 늘상 접하는 이미지나 언어의 의미등은 인간이 어떤 과학적 방법론을 선택해도 늘 오류를 범하게 만드는 원인들이며, 이들의 근간은 "몽상 (daydream) " 에 기인한 시적 이미지로, 글에 자주 등장한다. 그는 이런 상상력이 오히려 인류와 과학발전에 기여해왔다 주장한다. 과학사를 불 연속적 혁명들, 단절을 통해 새로운 시점으로 과학을 바라 보는 것에 의해 발전해 왔다 보았으며,  주창한 여러 아이디어들은 후에 포스트 모더니즘 철학자들에게 전해졌다. 이를 그간 서구철학이 추구해온 절대적 객관성, 합리성에 대한 비판적 관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Gaston Bachelard 는 시인들 중 가장 으뜸의 철학자, 혹은 철학자들 사이의 으뜸의 시인으로 불리운다.  서로 다른 영역들의 깊이있는 성찰을 엮으며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그의 저서들을 문학가가 번역하기란 녹록치 않았을 것이고, 철학 전공자라 하여도 홀로 번역하기 무척 어려워 뵌다. Gaston Bachelard의 책, "공간의 시학"도 얼핏 시-문학에 더 가까워 보이지만 건축공간과 공간을 구축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없이 과연 온연한 번역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나는 이 책을 불어 원전이 아닌, John H. Stilgoe의 64년 onion press 번역본의 94년 재판본으로 읽었고, 또 지인을 통해 우연히 얻은 한글판 ('74, 동문선, 곽광수 역) 을 본 것이 전부이니, 번역가 자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어느 나라의 누가 번역한다 하더라도 Gaston Bachelard와 같은 저자의 높은 수준의 감식안과 문학적 식견을 그대로 옮기기란 어려울 것임을, 저자의 건축 공간에 대한 이해 또한 전공자들 사이에 놓아도 결코 뒤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조심스레 해보는 것이다.

책은 -
1. "집" 에서 출발해,
2. 집이라는 태초의 공간을 "우주"로 명명하며,
3. 서랍, 궤, 옷장등의 가구등의 내측 공간,
4. 다시 둥지와 5. 껍질(*),
6. 코너, 모서리 공간 (corner,)
7. 축소 모형(**) (miniature,)
8. 미려한 것의 무한함 (intimate immensity,)
9. 닫힌공간(Inside)과 열린공간(Outside)의 대화,
10. 각지지 않은 = 둥긂(***) 의 양상 (The phenomenology of Roundness) 으로 마무리 된다.

(*) 이는 아마도 서로 다른 구조와 질료로 이루어진 외피를 의미하는 것일 게다.
(**) 혹은, 거대화된 세계?
(***) 나는 이를 구체(sphere) 의 투사된 이미지 (projected image)로 이해하였다.

목차의 전개에서부터 저자의 공간과 조형 구조 원리 이해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집이라는 원초적인 안락함에서 점차 추상과 개념공간의 세계로,  또 구석 - 모서리와 같은 Orthognol geometry에서 각이 없음으로, 일상의 텍스쳐에서 특정 질료의 반복 (가볍거나 무겁거나, 약하거나 단단하거나, 겹쳐있거나 하나로 뭉쳐있거나,), 그리고 관찰자와 세계의 스케일 변화에서 오브젝트의 독립적인 규칙, 페러메터..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자연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암호풀이 같은 목차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모두 나의 개인적인 관점이고, 한글판 번역은 많이 다르다. 영문 번역서를 먼저읽고 한글로 읽었던 문제도 있겠지만, 많은 부분에서 나에게는 그의 글이 건축가 어투에 더 가깝게 들리지 않았나 싶다. 문학이나 시에서 사용하는 동일한 어구들이 분명히 있을 터라 (서구에서 용어들은 영역을 넘나들며 공통으로 사용되곤 한다.) 무어가 더 올바른 번역이라 말하기에는 어려우나,  평소 자주 접하는 친밀한 영문 건축용어들이 문학의 틀을 빌려 아름다운 리듬감으로 설명되어 지는 것이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저자의 건축 공간에 대한 사려깊음이 가장 드러나는 장은 역시 책의 마지막 장이 아닐까 싶은데, 각이 없고 둥근 꼴에 대한 성찰이다. 그는 다시 독일 시인인 Rainer Maria Rilke의 불어 시편에 나오는 호두나무에 대한 묘사(****)를 통해 모서리의 대응이자 완전성을, 동시에 고립과 자기법칙성을 따르는 (나무의) 둥근 성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 시는 행과 행을 거치며 확산하며 서서히 내측의 제어 점으로 향한다.

책의 마지막 Rilke의 시와 Gaston Bachelard의 감상을 건축용어 처럼 번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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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언제나 스스로를 둘러싸
모든 것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하늘의 거대 돔 천정을 음미하는
...
언젠가 나무는 설계자(God)를 볼 것이니
그러나, 이를 확신키 위해
나무는 제 존재를 둥글게 발전시켜 나가고
성숙해진 팔들을 뻗는다.
아마도 내측에서 부터
생각할 나무
스스로를 제어하며 서서히
자신을 내어주는 나무
바람이 만드는 느슨한 변화들을
제거하는 형태!
"나는 제 자신의 둥근 성질을 성취하면서도 내부적으로 발전시키는 존재에 대한, 이보다 더 좋은 현상학 자료를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다. Rilke의 나무는 우연에서 나오는 형태들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변덕스런 사건들을 쟁취한 초록의 구체- 모서리 없는 둥그스러움을 흩뿌려댄다. 이제 셀 수 없이 많은 형태들, 그 수많은 나뭇잎들을 담게 되지만 어떤 흐뜨러짐 없이 둥글게만 존재한다: 언젠가 내가 존재하는 모든 이미지들, 모든 다양성을 가지면서 영속성을 내비치는 이미지들을 하나의 거대한 군으로 모으는데 성공한다면,  Rilke의 나무는 나의 이 구체적인 형이상학 앨범의 한 중요한 장을 드러내는 시작 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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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ugust 19, 2013

Andrea Palladio : 건축사서

Robert Tavernor 와 Richard Schofield의 현대영어로 번역된 Palladio의 건축사서.

Palladio 가 쓴 건축사서(1570)는 Isaac Ware에 의해 첫 영번역된 1738년 본 이래로 늘 종래의 판본만을 따르고 있었다. 현대 영문어체로 다시 번역된 것은 MIT Press 에서 출간된 1997년 본으로, 이 책은 2002년도 인쇄본이다.

Palladio는 건축 전공자라면 역사수업시간 부터 설계수업
시간까지 늘 접하게 되지만 딱히 가까이 와닿지는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딱딱한 좌우대칭의 평면, 늘 비슷비슷하고, 전통건축에 충실한 것 같기만한 외관은 Palladio 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한편, 그에 열광하는 이들로서는 쉬이 넘기 어려운 영역에 대해 무척 자부심 갖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영문어권 건축학계에서 유독 더 사랑받는 것 같다. 아마도 
Rudolf WittKover와 같은 이들 처럼 많은 영미권 학자들이 끊임없이 현대적 다이어그램으로 재해석하기 쉬운 시스템화된 작품 목록을 모아두고 있기도 하고, 고전 건축도면에 실제 스케일 치수를 적어놓아 무척 실용적성격이 강하기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17세기 영국은 그의 책을 바탕으로 팔라디아니즘을 확립해 전 유럽으로 확대시키기도 했고, 초기 미국 건축의 교본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특징들이 Palladio의 천재성을 드러낸다 보기에는 어렵다. 비록 
Palladio가 고전 건축들의 비례를 알기쉽게 집대성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도 고전 건축들을 집대성한 문헌들은 일부 존재한다. 오히려 Palladio는 그런 고전 건축들에서 얻은 실측 비례들을 실제 건축축조과정에 적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왜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있는 글을 썼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를 이야기할 때는 고전 건축의 질서, 기둥구조의 비례부터 이야기하곤 한다. 이를테면, "
이오니아양식의 기둥 사이의 간격은 기둥지름의 2.5배이며 코린트 양식은 2배..."  같은 암기과목 시험문제 답안 같이 지루해 보이는 것들 말이다. 조금 힘들더라도 당 시대와 양식이라는 장식을 거두어 놓고 보자면, 그의 저작물들이 오랜시간 쌓인 데이타의 차이와 구분, 그 실제적 적용에 대한 문제와 나름의 결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둥과 같은 양식을  카테고라이즈했다고만 한다면 위대한 건축가가 바라보는 역사적 맥락에 따른 축조과정을 무시한 처사일 테다.

현대에 들어, Palladio는 고전 양식들의 정확한 수치와 비례를 찾아내 자기 시대의 역사적 맥락에 맞춰 데이타 매트릭스로 치환하고, 이를 다시 다양한 스케일과 환경에 맞춰 도면화할 수 있는 시스템화를 꾀했다고 보아진다. 그러니 그의 작업은 하나 두 개의 유명 작품으로서만 아니라 그의 건축 인생전반을 이루는 작업 목록들을 추상화해 바라보아야 흐름을 읽어나갈 수 있다. 건축사서는 그의 건축관과 작품을 이해하게 해주는 첫 관문이다.

본래 건축사서가 대중들이 알기쉬운 짧은 문체로 씌여졌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간의 영번역 책들이 고전어투의 딱딱한 글로 읽혔다는 것은 쉬이 납득이 어렵다. 게다가 책들은 두꺼운 하드커버에 읽기 어려운 활자들로 이뤄져 있었다. 다소 늦었다고 생각되지만 이를 다시 현대어로, 그리고 목판본으로 인쇄된 도판들의 설명을 깔끔한 인쇄로 정리한 위 책은 소프트 커버에 종이질도 가벼워 읽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건축 질을 넘어서 재해석과 응용, 적용이 가능한 문서화. Palladio의 프로젝트의 집적물인 건축사서의 번역 현대화를 바라보노라면, 현대의 
팔라디안들이 취해야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Tuesday, March 6, 2012

Semiology of Graphics : 쟈끄 베르텡

건축가에서 시작해 지도제작자, 그리고 현대의 정보 그래픽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쟈끄 베르뗑의 저서 "그래픽의 기호학." 이번 리뷰는 저자와 인포비즈넷의 영문 인터뷰를 번역해 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67년도 편집된 쟈끄베르텡의 "그래픽의 기호학"은 그의 지도제작자로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중요한 저작물이다. 책은 최초로, 그리고 가장 넓은 목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정보 시각화라 부르는 이론적 기반이 되는 일면을 보여준다. 디지털 매거진 infoVis.net 은 그의 그래픽 연구의 길고 긴 행적에 대한 작은 오마쥬로 인터뷰를 해보고자 한다. 쟈끄 베르텡은 몇 몇 부분 그의 2001년 저술된  "Semiologie Graphique" 를 인용하며 우리의 질문들에 대답했다. 이런 이유로, 이 인터뷰의 기본적인 콘텐트들은 위 문서와 대동소이 하다. (이 문서는  "La Graphique" 에서 여러 언어로 읽을 수 있다.)

인포비즈넷:
미스터 베르텡, 지도제작자로서의 70년 이상의 대단한 경력은, 아마도 당신이 10살 때 초등학교에서 받은 1등 지도제작상을 받았던 것에서 시작하지 않는가 싶은데, 실제로 당신의 경력은 이렇게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는가?


쟈끄 베르텡
:어릴때 부터 그림 그리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나는 아마도 건축과 그림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지도 제작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마침내 운명... 운명이 역시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인포비즈넷
:
당신의 책  “Semiologie Graphique” 는 PC 가 태동하기전, 그래픽 디자인이 보급되기도 전에 퍼블리싱 되었다. 현재 인터넷에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들과 컴퓨터들이 제공하는 비쥬얼 커뮤니케이션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러니까, 이미 많은 이들이 컴퓨터로 하는 정보시각화에 익숙하다는 말인데, 당신이 보기에 이런상황에서 컴퓨터의 역할은 무엇이라 보는가?

쟈끄 베르텡
:
컴퓨터 사용은 그래픽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 정보를 얻기위해 데이터를 다루는 것.
  • 얻어낸 정보와 (필요할 때에는) 소통 하는 것. 
컴퓨터는 고려없이 작업하면 그저 쓰잘 데 없는 이미지들만 겹쳐 버릴 수 있다. 그러니까  모든 그래픽은 표에 상응한다. 는 것을 고려 해야한다. 표는 당신이 세세한 것부터 전체적인것까지 포괄할 수 있는 3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준다. 마지막 질문 까지 답을 얻어 이해할 때,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이해한다는 것은 일반적 수준에 도달해 중요한 (그룹)패턴들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그래픽 기능이란 바로 이 세가지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1. 무엇이 데이터 표의 X,Y,Z 콤포넌트에 해당하는가? (그것이 대체 무엇에 관한 것인가?)
  2. 그룹 안의 어떤 것들이 X 와 Y와 Z를 구축하는가? ( 가장 기본레벨의 정보가 무엇인가? )
  3. 예외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어떤 종류의 문제에도 적용 가능하다. 질문은 그래픽 구축이건, 그래픽 인벤션이건 그 실용성을 측정하고, 실용적이지 않은 그래픽 사용을 피하게 해준다. 오더러블 매트릭스(Orderable Matrix)는 이 모든 질문들에 답을 해준다. 이것이 바로 가장 기초적 그래픽의 구축이라 할 수 있다. 정보배열은 반영된 것들을 정돈하고, 자동적 조작을 가능케하며, 당신이 그래픽을 정의내리고, 또한 가장 정확한 구축이 가능하게 만드는 열쇠라 할 수 있다. 
MatrixTFig_18.gif (10706 bytes)
5개국의 고기 생산. 표 (15) 는 기초 고기 생산에 관 한 것이다.  (질문 1). 이는 전세계 정보와 같이 보면 더 흥미롭다.  (질문 2).  그 답은 (역주. X,Y축의) 구조로 제공된다.  (16) 오더블 메트릭스 즉, 재배열한 행과 열이 데이타를 보여준다. (15) 예를 들어, 25 숫자 처럼, 2개의 그룹으로 축소된다: 정 반대되는 구조의 A 와 B.
C국가는 예외이다. (질문 3).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는다.
17의 구조는 단지 오더블 메트릭스만 보여준다.  (18) 모든 질문의 답을 해주고 있다.  이 메트릭스는 가장 기본적인 그래프 구조이다.  이는 이미지 속성의 최적화된 어플리케이션을 구성한다. 그리고 논리적인 연산을 재개시킨다. : 데이터 - 메트릭스 - 리덕션 - 예외 - 논의 - 그리고 - 소통
SourceLa Graphique , 글자와 이미지들. Roerto Gimeno 제공. 
오류가 표출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이는 지도제작 방법론에서도 필요한 전략이다. :
  • 컴퓨터 클래스 (혹은 카테고리) 들의 등차, 혹은 중화. 수학적 연산일 수 도 있고,  (ratios, densities. %, indices), 그래피컬 연산일 수 도 있다. (reticules or contour levels) 
  • 크기에 변화를 주기, 자연스런 범위내 세기 값들과 (degree of intensity) 과 더불어 이러한 변화값들은 풀 수 없는 정보량 선택의 문제들, 오류 표출을 피하게 한다. 이는 단지 명백한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르려는 일반적 문제들이다. (부족한 intensity, 너무 자잘한 그리드가 혼동을 야기하는 것, 목표값에 불완전한 분석...)
  • 차단 단계의 다양화. 효과적으로, Z축 양을 표현하기 위해 두가지 질문을 한다. : 무엇이 세기바탕값 (degree of intensity) 의 분포 특징을 만들어 내는가? 그리고 어떤 레벨이 더 쓸모있는 이미지를 드러내게 하는 가? : 작은  “섬” 들을 지우고, 다른 것들과의 유사성들을 드러내기 위해, 특정한 면들을 가리고, 차단 값을 세팅한다…? 차단 값 변화에의 가능성은, 컴퓨터 과학에 힘입어 효율적 솔루션으로 구성할 수 있다. 
인포비즈 넷:
당신의 작업 전 후로 해서, 그래픽 이론 에 대한 흥미는 대단히 줄어들었다. 사실, 오늘날 정보 시각화는 여전히 과학이라기 보다는 창의력을 요구하는 프랙티스에 가깝다.  모든 노력을 통합해 "그래픽의 기호학" 이론 프레임을 넘어서려는 심각한 작업도 상당히 적다. 이것은 사실인가? 그렇다면, 왜 그런 것인가?

쟈끄 베르텡
:
프랑스에서는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 사실일 것이다. 반면, 미국이나 영국, 혹은 독일의 경우..여전히 풍부하다...상상력을 활용한 오더러블 메트릭스문제들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두 개의 데이터 컴포넌트가 정리 가능할 때의 기본적 구축이 바로 그 정리가능한, 오더러블 행렬의 문제라 할 것이다. 그 순열은 분석, 알고리즘 적용과 그래픽 적용의 사이 즈음에 위치한, 그런 보완을 제시한다. 


인포비즈 넷

아마도 그래픽의 가치는 단지 커뮤니케이션으로 알려진 사실과 결과를 넘어, 패턴과 널리지(Knowledge)를 발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픽으로 잘 드러나는, 데이터의 산 속에 숨겨진 정보는 단순하며, 직관적인 방법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가?

쟈끄 베르텡
데이터는 이해하기 위한 그래픽으로 변화된다. 지도, 다이어그램은 바로 자세히 알아보기위한 문서이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Understanding)은 모든 데이터들과 통합해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가장 적은 숫자의 기초적인 데이터로 축소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이 바로 그래픽이나 수학에 있어서의 데이터 처리 객관화이다. 앞서 말했듯이,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어떤 그룹이 X의 데이터를 만드는지, 그리고 Y의 데이터를 만드는지이다. 질문에 대응하는 구조는 오더러블 매트릭스, 행과 열을 재배열 하고 예외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 정보의 두 가지 요소 (X와 Y의 그룹들 그리고 예외들)는 대게 다른 어떠한 구조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 외려, 이것들은  수학과 그래픽 처리에 앞서서, 보여져야 한다. 그후에, 코멘트를 적고, 관련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인포비즈 넷
:
우리가 테크놀로지로 유입되는 많은 양의 정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무엇이 정보 시각화의 근 미래를 촉진 시킬 수 있을 것 같은가? 

쟈끄 베르텡
:
우리는 결코 우리의 강력한 시각 인지 시스템, 3차원 이미지를 잊어선 안된다. 그러나 이미지는 언제나 3개의 차원으로 이뤄져있다는 것, 이 제한된 결과야 말로 중요한 것임도. 또한, 학제간 경계를 넘나드며 교류하는(interdisciplinary) 학습이란 언제나 어려운 것이다. 지리학자들이 공간에, 역사학자들이 시간에, 심리학자들의 개개인간에, 사회학자들이 사회적 카테고리에 놓인 상태에서, 과연 무엇이 , 그 무엇을, 개개의 학교, 개개의 디씨플린, 개개의 분석센터들이 그들의 X,Y,Z컴포넌트들을 그들의 정보체계 안에서 분류해 내는 이른바 "총체적 과학" 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특정처리는 단지 잘 분화된 경계 내에서만 판단할 수 있다. : 데이터 표와 같은. 그러나 셀 수 없을 정도의 잘 분화된 경계가 있는 것도 사실 이다. 이성적인 결과들이란, 그게 뭣이 되었건 간에, 셀 수 없을 정도의 비이성에 의해 익사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